영상
리기산으로
리기산
그린델발트로
루체른의 아침
오늘은 리기산 가는 날. 식전부터 언니랑 크게 한 판 했다. 자는 것과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한 송가족. 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난 아침마다 이들이 꾸물대서 스트레스. 언니는 내 짜증에 스트레스. 스트레스와 스트레스가 정면으로 만나 언성이 높아지고 거친 말이 오갔다.
어쨌든 일정대로 이동을 해야하니 대충 수습, 짐도 대충 정리해 놓고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식당엔 온통 한국 사람뿐. 메뉴를 고르다 옆에 있는 직원한테 물어보니 뭐라고 하고 콧방귀를 낀다.
뭐야 이 거만한 태도는? 네 이년 잘 걸렸어. 도끼눈을 들어 쳐다보니 눈을 내리깔고 도망간다. 한국말이면 시원하게 한마디 확 했겠구만. 누구든 걸리면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부어 주려고 했는데 언어가 걸리는구만. 다음에 올 땐 영어 욕 좀 연습해야겠다.
거지같은 기분으로 아침을 먹고 늦어서 허둥지둥 체크아웃. 이놈의 호텔은 어찌된게 제대로 된 직원이 없다. 짐을 맡기는데도 퉁퉁대는 리셉션 직원. 서비스 정신은 밥말아드셨는지 귀찮은 표정으로 응대. 땡큐라는 말도 해주고 싶지 않은 이 호텔의 오전반 직원들. 컴플레인을 하려다 그마저도 시간이 아까워 만다.
숙소를 나와서 페리 터미널까지 송자맨 23번 버스로, 난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길. 햇살을 받은 건물들과 호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숙소에서 잡친 기분이 눈 녹듯이 풀어졌다.
루체른의 아침
열심히 걸어서 터미널에 가니 다행히 배 시간이 약간 남아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어제 산 스위스 패스로 배도 탄다. 비싼 값을 하는구만.
리기산 Mt. Rigi
9시 12분 페리를 타고 출발. 풍경이 정말 너무 예뻤다. 갑판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맏았다.
바람 마저도 협조를 해주는 따스한 날씨. 페리는 몇 군데에 정차하고 한 시간쯤 걸려 비츠나우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선 바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꾸물대다 조금 뒤쪽에 내렸는데 열차는 이미 사람들로 꽉차서 앉을 자리고 없이 꽉찬 상태. 맨 앞칸으로 몰려 서서간다. 송자맨 간신히 앉고 나는 서서 가는데, 바깥 상황을 본 기관사가 나와 내 옆에 있던 아가씨 두 명을 기관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 나는!!
40여분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올라갈수록 멋진 풍경. 왼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뉴질랜드의 퀸즈타운과 무척 비슷한 느낌.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열차 안의 사람들이 동시에 작게 내뱉는 탄성이 모여 큰 소리가 만들어졌다.
산악열차 타고 편하게 오르는 길
여긴 누가 사는걸까
올라가는 열차의 왼쪽에 앉으면 창문으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지만 상관없다. 올라가면 어쨌든 다 볼 수 있는 풍경이니까. 열차의 종착역인 리기 컴Rigi Kulm 역에 내리니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있고 뒤로는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서 한참을 사진을 찍고, 얼음이 덮힌 바닥을 조심조심 걸어 정상으로 올라본다.
모두 완전 흥분 상태. 바닥은 꽁꽁 얼어 미끄러질까봐 뒤뚱뒤뚱. 바람까지 불어대니 정신이 쏙 빠질 것만 같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천천히 정상으로. 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감동이 앵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춥다.
한참을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미친듯이 사진을 찍다가 리기컴 호텔 레스토랑에서 잠시 휴식. 몸을 녹이며 커피를 한 잔 하고 시간 체크를 해보니 기차는 방금 떠났다. 다음 열차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길래 나는 한 정거장을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겨울이가 따라나서겠다 하여 둘이 같이 미니 하이킹.
다시 루체른으로
언니랑 딸기는 Rigi Kulm에서 열차를 타고, 나랑 겨울이는 리기 스테플Rigi Staffel역에서 조인, 리기 칼트바트Rigi Kaltbad에 내려서 케이블카를 타고 Weggis 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럴싸한 계획.
스위스의 설산을 하이킹 하다니. 꺅! 너무나 신나서 눈밭을 신나게 걸었다. 겨울에도 이렇게 좋은데 여름에 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이 길을 더 오래걷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겨우 40여분의 있을 뿐. 우리는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조심조심 눈길을 걸어 내려왔다. 리기 스테플Rigi Staffel역에 도착을 하니 기차시간까지 약 15분 정도가 남았다. 넘 서둘러 내려왔군.
하이킹
햇볕에서 양말을 말리다 기차를 탔다. 만나기로 한 칸에 언니랑 딸기가 없어서 걱정이 됐지만 약속을 믿고 리기 칼트바트에 내렸다. 바로 앞 칸에서 내리는 딸기.
13시40분에 출발하는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면서 페리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Weggis에서 14시05분에 배가 있다. 이걸 타려고 허둥지둥 급하게 선착장에 왔는데 배는 없고 바람도 사라진 조용한 호수만.
사람들에게 물으니 내가 본 배 시간은 알고보니 일요일만 운행하는 배라고 한다. 어쩐지 곤돌라에서 내린 사람 중 우리만 바쁘더라니. 루체른에 돌아가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하는데 엉뚱한 시간표를 봤으니 큰일날 뻔했다. 버스랑 기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그냥 기다렸다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든 잘 노는 송자매
예정에 없던 자유시간. 우린 원래 인터라켄에서 자유시간을 보내려했는데. 나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안절부절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송자맨 호수가에서 오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쩝.
1505에 배를 타고 다시 루체른으로 간다. 배갑판에 앉아 있으려니 바람이 없이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고 몽롱. 여기가 시드니인지 뉴질랜드인지 헷갈렸다. 루체른에 도착하니 16시가 다되는 시간.
그린델발드Grindelwald로
숙소에 가서 맡겨둔 짐을 찾고 중앙역으로. 예약해 둔 열차가 아니라 천만 다행이었다. 게다가 한시간마다 있으니 어찌나 감사한지. 우리는 17시05분 열차를 타기로 했다.
서둘러 중앙역으로 가는 길. 딸기가 갑자기 배낭을 메지 않겠다고 삐딱하게 구는 걸 보니 배가 고프거나 뭔가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듯. 이럴 땐 배부터 채워줘야 한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서 루체른 레이크애 자리를 잡았다. 캐리어로 테이블을 만들고, 배낭을 깔고 앉았다. 우걱우걱 맛있는 햄버거. 이것이 여행의 맛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것.
길에서 햄버거 먹기
배를 채우고 역에 와서 필요한 현금을 좀 찾고 12번 승강장에서 기다리다 보니 바로 열차가 왔다. 언니랑 겨울인 피곤했는지 인터라겐에 가는 내내 잔다.
열차는 19시쯤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그린델발트로 이동해야 한다. 내리자 마자 전광판을 확인하고 지하도를 건너서 2번 승강장으로 왔는데 그린델발트행 열차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순간. 물어볼 사람도 없다. 종종거리며 뒤쪽으로 가보니 뒤에 있네. 왜 같은 플랫폼에 다른 행선지의 기차가 나란히 서있는거지. 휴. 스위스 다 좋은데 읽을 수 없는 말로 쓰여 있는 관광지 표시와 간판들이 종종 날 짜증나게 했다. 풍경은 좋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대할 땐 문맹이 된 듯한 느낌이 참 거슬린다.
이런거
어쨌든 무사히 열차를 갈아탔다. 오늘의 목적지는 그린델발트 엘리스 할머니네. 언니가 꼭 숙속에 묵어야 한다고 해서 예약하느라 애 좀 썼다.
그린델발트 역에 내리는 순간 겨울 왕국에 온 느낌. 사방에 눈이 쌓여 있었다. 꽁꽁 얼어 있는 길을 미끄러질새라 조심조심 걸어 숙소로 이동. 이럴 땐 배낭을 메고 오길 참 잘했다 싶다.
8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 문을 두드리니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 분이 그 유명한 앨리스 할머니시군. 스위스 전통 집. 복층으로 된 방이 너무나 아늑했다. 늦은 저녁은 라면으로 해결.
겨울 왕국에서 먹는 라면이라니 훗
오늘의 반성. 열차 시간, 곤돌라 시간, 페리 시간을 제대로 확인 안해서, 일정은 12시에 마치고 오후 5시 기차를 탔다. 미리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서 길에 시간을 많이 뿌렸다. 물론 그 시간도 여행의 일부이지만 그건 널널한 시간이 있거나 별 계획이 없을 때 얘기고. 빡박한 일정대로 움직이는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금이다. 깊이 반성하며. 내일은 잘하자.
Topic: europe-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