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우피치 투어
사라진 기억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투어 하는 날. 사실 이 날은 기록이 없고 난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흐리고 비가 왔다는 것 빼고는, 몇시에 어디서 만나서 무엇을 보고 어디서 해산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했구나 정도로 기억할 뿐.
그나마 사진과 영상을 보고 나서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비가 왔다는 것, 매우 이른 시각에 투어가 시작되서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상태였다는 것.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표를 따로 끊었다는 것, 가이드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는 것, 미술관 투어 후 밖으로 나와 시내 투어도 했었다는 것. 우피치 투어는 그렇게 몇 장면 만을 남겼다.
투어를 하는 날은 동선을 신경 안쓰고 따라만 다니고 쉽게 볼 수 있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관심도 기대도 없었던 미술관 투어였기 때문에 별로 기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스토리도 감동도 배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수동적이었고, 이날 오전은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피치 미술관 Uffizi Gallery
그래도 기억을 떠올려 재구성을 해보면, 미술관은 매우 조용했고 가이드의 설명은 재밌었다. 몇 몇 작품들은 꽤 인상적이었지만 난 빨리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다.
우피치 미술관
그나마 기억나는 작품.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우리는 가이드가 든 깃발을 따라 베키오다리를 들렀다가 시뇨리아광장으로 가서 광장에 있는 조각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단테의 집을 둘러보고 두오모 광장에서 해산했다. 그게 투어의 끝이다.
베키오 다리
아무리 작품이지만 거시기는 좀 그래
피렌체 야경
다음 일정인 피렌체 야경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 몇가지 음식을 테이크어웨이 해서 점심을 떼웠다.
피렌체 야경은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서 보기로 했다. 멀지도 않고 일몰까지는 시간도 널널하기에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젤라또를 하나씩 사먹고 걷기 시작, 강을 건너 광장으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의 넓은 계단을 송자매와 가위바위보를 하며 올랐다.
광장에 다다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왠지 데이트 하러 온 사람들만 가득한 것 같은 이곳. 계단에 앉아서 어두워지길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떨어지자 어두웠던 강건너 피렌체의 풍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베키오 다리와, 단연 돋보이는 두오모 성당과 종탑. 한쪽에서 들려오는 기타연주와 노래소리가 언덕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했다.
미술관 보다 100배는 더 감동적이었던 피렌체의 야경
찬 공기 속에 한참을 앉아 있다 일어났다. 광장을 떠나려다 보니 여기도 다비드상이 있네. 진짜 다비드 상은 어디에 있는걸까.
저녁은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광장을 내려와서 한참을 걸었다. 레스토랑은 내가 골랐던 것 같은데 어딘지는 모르겠고, 밤거리를 걷고 또 걸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지루한 길 재미를 위기 위해 익살스러운 교통 표지판을 찾으며 걸었다.
익살스러운 거리의 교통 표시판
나도 지칠 무렵 식당에 도착했다. 고깃덩어리가 주렁주렁 달린 조용했던 식당이었다. 우리는 몇 가지 음식과 티본 스테이크를 시켰고 너무 맛있어서 하나를 더 시켰다. 하지만 두번째는 배가 불러서인지 별로였다. 그래도 모두 만족스럽게 저녁을 먹었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식당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멀지 않았고 피렌체의 야경을 즐기며 우리는 또 걸어왔다. 맛있는 저녁을 먹어서인지 씩씩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발이 무척 고생한 날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내일은 로마로 이동하는 날. 여행을 하면서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박물관 미술관의 작품 보다는 일출 일몰 야경 등의 풍경이 나는 더 좋다. 성당안을 들어가는 것보다 밖에서 보는게 더 좋고,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걸으면서 거리를 느끼는 것이 난 더 좋다. 실컷 걷고 피렌체의 야경을 보았으니 된거다. 숙소로 돌아와 정리를 하고 지출 정산. 딸기가 거들었다. 아. 돈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도 나는 좋아한다. ㅋ
Topic: europe-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