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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돈이 있으면 일을 할 것인가
5 Ma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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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있으면 일을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늘 “그렇다"라고 대답해왔다. 그저 막연히 사람이 일을 안하고 뭐하고 사나?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날이, 다시 말해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생길 날이 나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질문의 의미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나에게 이 질문을 다시 해보려고 한다. 이번엔 답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질문을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있으면 일을 할 것인가?”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상황과 환경, 라이프 스타일과 추구하는 가치등 여러가지 요건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숫자로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1억만 있어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고, 누군가는 100억이 있어도 모자라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양가족이 있냐 없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가족의 가장이라면 그 숫자가 아주 클 것이고 독신이라면 그리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범위를 어디로 하느냐에 따라서도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내 아래로 3대가 먹고 살아야 할 만큼의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숫자가 아주 클것이고. 자식에게 물려줄 것도 없고 내 한몸 잘 살다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숫자는 작을 것이다.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 여기에 평균이나 옳고 그름 따위는 없다. 개인의 상황에 맞게 스스로 정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다면 일이란 뭘까. 우리는 늘 육체 및 정신적 활동를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하는 육체 활동을 놀이라고 하지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의 활동은 놀이, 학생의 활동은 공부라고 한다. 성인이 되고 학교라는 기관을 떠나 직장인 또는 사업가로 사회에서 어떤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해야만 우리는 그것을 보편적으로 일이라고 한다. 즉 어떤 행위로 인해 돈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내면 일, 아니면 논다고 표현한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논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결국 일은 돈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이란 것을 하는 것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다. 재미로 하는 일도 있지만 재미로 한다면 돈을 받지 말던가, 아니면 자기가 하는 일이 돈 벌라고 하는 일이라고 해야한다. 일은 돈이 목적이 되는 활동,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하는 육체활동이라고 정리가 된다.

물론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 일이 어떤 중요한 가치를 생산해 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야만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다. 스스로 재미있고 또 보람과 성취감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일이기도 하다.

일이 주는 그러한 기쁨을 모른다면 나도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살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빨리 회사를 가고 싶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일이 있으면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하곤 했다. 회사에 기여하고 인정받는 것이 즐거웠고 그러면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난 참 즐겁고 행복한 직장인이었다. 늘 무언가를 배우는 기쁨이 있었고 그분야가 나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5년의 직장 생활 후 회사일이 주는 기쁨은 결코 일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보람과 성취는 회사 밖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일을 우리는 봉사 또는 여가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댓가없이 남을 돕는 자원봉사나 스스로 좋아서 하는 여가와는 달리 돈이 보상이 되면, 하기 싫지만 돈 때문에 하는 일이든 좋아하면서 돈까지 되는 일이든 어쨌든 그건 일이다. 그것은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일 수도 있고, 좋아하진 않지만 잘하는 일 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의 정의를 내리는데 그 일이 즐거운지 아닌지 잘하는 일인지 아닌지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질문에서 일이란, 돈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 활동,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일할 기분인지 아닌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이 약속한 시간동안 정해진 자리에서 주어진 임무를 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고 신체적 나이가 허락할 때까지 이것을 반복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함정

나는 일이란 것은 ‘돈을 벌기 위해 해야하는 육체 활동’ 이라고 정의를 했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일이란 육체활동을 매개로 시간을 파는 행위이다. 사실은 이게 내가 앞으로 일이라는 것을 계속 해야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 이유이다.

시간은 돈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나중에 쓰려고 저축하거나 쌓아둘 수도 없다. 시간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 그 중에서도 앞으로 남은 것만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보이지도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잘 못느끼고 살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리소스이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몸만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즉. 육체 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제공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시간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시간과 노동력을 돈으로 맞바꾸는 것이다.

다시 질문

이런 전제로 질문을 다시 풀어서 쓰면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있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보낼 것이냐?‘라는 것이다. 일은 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결국 이 질문은 돈이 많은데 돈을 벌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사용하겠냐는 질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거다. 맛있는 호떡을 만드는데 밀가루와 설탕이 필요하다고 치자. 그동안 밀가루를 열심히 사다 나른 덕에 밀가루는 이미 창고에 충분히 쌓여 있다. 이제 설탕이 있으면 맛있는 호떡을 만들 수 있는데 정작 필요한 설탕을 살 생각은 안하고 습관처럼 계속 밀가루만 사다 나른다면 맛있는 호떡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충분한 돈이 있는데 돈을 벌기 위해 몸과 시간을 사용하겠냐고?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을 이미 충분히 있는 돈과 바꾸겠냐고? Yes라고 대답을 한다면 일을 정말 사랑하거나, 돈을 정말 사랑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내 대답은 No다. 너무나 당연히 No다. 이미 충분히 가진 것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은 욕심일 뿐 아니라 인생 낭비이다.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현실

물론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 이지만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있다면’이라는 가설이 만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일을 한다. 쉐어도 돈 때문에 하고 일도 돈 때문에 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공간을 돈을 위해 쓰고 있다. 그렇게 말하기엔 스스로 속물로 느껴지니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다행히 재미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돈이 목적이다.

적당한 돈이 있다면 아무리 재밌는 일이라 하더라도 남의 회사에서 시간을 저당잡힌 종업원으로 일할 생각은 없다. 나에겐 그보다 더 큰 다른 여러가지 인생의 재미가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다. 나에게 일은 그 많은 재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버는게 인생의 목표처럼 되어버려서 본인이 돈이 왜 필요한지는 잊어버리고, 얼마가 필요한지도 모른채 마치 돈에 중독된 사람처럼 계속 일을 한다. 돈을 벌기만 하느라 쓸 줄도 모르고 쓸 시간도 없다.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돈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을 알지 못한다.

돈은 꼭 필요한 것이고, 없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이다. 음식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사람을 만나려면 돈이 필요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인생 자체가 돈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돈은 결코 많을수록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돈은 인생을 구성하는 도구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럼 충분한 돈이 있다면 뭘할까.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돈을 버느라 써버린 시간을 회복할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아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시간이 없어서 미루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아마도 돈과 관련이 없는 봉사 또는 여가, 돈에 목적이 없는, 아니 오히려 돈을 써야하는 취미 활동이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창작 활동을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활동이 경제 활동으로 이어져 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돈이 결정의 기준의 되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필요한 것이 뭔지를 알고 주어진 리소스를 잘 활용하는 삶.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 그곳에서 오는 기쁨이 내 인생의 진정한 기쁨이다. 그것이 나의 맛있는 호떡 레서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