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는 날. 공항까지 혼자 가야했다. 집을 나올라고 하는데 열쇠가 없는거? 짐을 다 뒤집고 열쇠를 찾느라 15분을 보냈다. 열쇠는 결국 어제 밤에 입고 나갔던 모자티 안에 있었다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양쪽 어깨에 패니어 하나씩과 핸들바백. 페니어 각각 약 5키로. 핸들바백 2kg. 이걸 들고 걷기가 싫어서 무단 횡단으로 갑을 시티텔 앞으로 돌진. 한시반이 다 되서야 버스를 탔다.
홍대입구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김포공항에 도착. 딱 한시간 전에 도착했다. 미리 준비한 이케아 쇼핑백에 페니어를 넣어서 짐을 보냈는데 금방 연락이 왔다. 통과가 안되니 수하물 검사실로 오라고. 코펠안에 실린더 가스와 라이트 배터리가 문제. 배터리는 설명하고 보여주니 통과되고 가스는 폐기처분. 에잇 가스는 왜 들고온거야.
제주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고 바이크 트립으로 직행. 샵 앞에는 이제 여행을 마친 사람들과 막 떠나는 사람들이 섞여 분주한 분위기. 내 자전거는 앞마당에 잘 세워져 있었다. 배송중 앞 뒤 랙을 다 분해해 놔서 다시 조립하는데 30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펌프를 빌려 타이어 바람까지 넣고 준비 완료. 막 출발하려는데 아저씨가 생수 한병을 줬다. 감사합니다.
예정은 5시에 출발이었는데 비행기도 연착되고 랙 다는데 시간을 써서 6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길은 찻길을 피해 좀 돌더라도 해안도로로 가기로.
날씨는 좋았다. 오늘 대충 한 20km 만 가면 되고 널널하게 한시간 반이면 될 것 같았다. 여유롭게 달리면서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해변 도로를 타고 이호테우 해변까지는 잘 왔다. 잠깐 서서 사진도 찍고 바다도 봤다. 계속 달리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언제 어디서부터 였는지 모르겠지만 왜 갑자기 해를 등지고 달리고 있는거지? 왜 다시 비행기가 보이기 시작한거지?
네이버 지도를 꺼내 봤지만 이상하다 난 분명 경로에 있는데? 이상해서 구글맵을 열어보니 이상한데로 가고 있었다. 내가 뭐에 홀렸는지 방향을 잘못 잡고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나보다. 망할 네이버맵 GPS 위치 업데이트가 느리구만.
어딜 얼마나 잘못 온건지 모르겠지만 빨리 방향을 잡고 열라 달렸다. 지금까지의 여유는 끝. 첫날부터 야간 라이딩을 해야하나. 이 실수를 만회 해보겠다고 한눈 안팔고 열심히 달렸다. (GPS 기록을 보면 갑자기 평속이 확 높아진걸 알 수 있다.)
해가 떨어졌다. 애월까지는 7키로 남았단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안되겠다, 라이트를 꺼내어 달려고 보니 이런 젠장. 거치대를 안가져왔네. 손에 들고 달린다. 지도 보랴 라이트 밝히랴. 허둥 그리고 지둥.
애월항을 지나 곽지과물 해변으로 가는 길. 자전거 도로의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핸들바백 뚜껑이 제대로 안닫혔는지 보도블럭에 걸려 자전거가 덜컹하는 순간 핸들바백 안에 있던 밧데리팩과 주머니칼이 튕겨나왔다. 여기까진 다행.
더 어두워지니 맘이 급해졌다. 씨게 달린다. 잘 보이지 않으니 또 덜컹. 브레이클 잡았지만 뭔가 또 튕겨 나왔따. 머지? 뒤를 돌아보니 저 까만 네모난 것은.. 나의 핸드폰? 으아악 -
돌아가서 보니 작살이 나있었다. 전화기는 덜 닫힌 핸들바백에서 튕겨져 나갔고, 나는 그걸 살포시 밟고 지나간 것이었다. 액정 아래쪽이 박살나서 너덜너덜. 다와서 이런일이 생기다니. 그것도 첫날부터. 우씨. 아 쫌 조심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다 뭔소용. 다행히 화면은 들어오고 터치도 된다. 그나저나 이 참사의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사진을 못찍네 젠장. 분노와 반성과 안도와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게다가 아직 나는 길에 있으니 마음은 복잡했다.
너덜거리는 폰을 들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일단 해변으로 와서 야영장에 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데크 하나를 골라 그 위에 텐트부터 치기로 했지만 결국 끙끙 대다가 포기. 이번에 새로 산 내 텐트는 하필 반자립형이다. 데크엔 펙다운을 할 수가 없고 데크 주변은 왠 씨멘트 바닥. 자리를 옮겨 넓고 평평한 잔디밭에 솔방울을 걷어내고 그 위에 후딱 텐트를 쳤다. 이렇게 쉬운 것을.
텐트와의 전쟁을 마치고 자전거를 묶을 때가 마땅치 않어 자전거를 나무에 간신히 묶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저녁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배도 안고팠다.
일단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 탐색. 식당 호텔 편의점 없는게 없이 다 있지만 밥이 안넘어갈 듯.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세수만 하고 바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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