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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주도 자전거 여행 #3 중문에서 표선
21 Ap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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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내렸다. 초저녁 부터 잠이 들어 중간에 몇 번 깨었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전기담요에 등을 지글지글 지지며 창문으로 떨어지는 비소리를 듣는 것도 꽤나 운치있는 일이었다.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침대 밖으로 나왔다.

방에는 나말고 아무도 없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옆방 침대에 커튼 여는 소리까지 다들리는 이 곳. 아직 아무도 기척이 없으니 동작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정리할 텐트가 없으니 여유로운 아침. 창밖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서귀포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 시간을 맞춰 가야하는데 기상예보를 보니 오전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짐을 정리하는 동안 비가 잠시 잦아 든 것 같아 우비를 입고 짐을 싣고 출발할 준비를 마쳤는데 나가보니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10시에는 출발해야 약속 시간을 여유있게 맞출 수 있으니 더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신났던 내리막길

10시 출발. 비를 맞으면서 달린다. 다행히 뿌리는 비.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는 동안 땀이 나니 안밖으로 축축하다. 달리는동안 어느새 비가 잦아들고 바람이 불어주니 젖었던 우비는 금방 말랐다. 우비를 벗어던지고 원래 라이딩 복장으로 달린다.

서귀포에 11시 10분에 도착. 버스 터미널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약속시간. 서귀포 로터리에서 만나 집을 보고 점심을 먹고 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출발 한 시각이 2시쯤.

자구리 문화 예술공원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서귀포에서 다시 표선 방향으로 달리는 길은 내가 이번 제주여행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구간이다. 자구리 문화예술공원에서부터 정방폭포를 지나 보목동 해안길을 따라 달리는 길. 특히나 한라산을 보면서 달리던 쇠소깍 부근은 사람이 많긴 했지만 너무 예뻤다.

위미에서 남원까지는 해안도로를 벗어난 찻길 옆으로 난 자전거 길인데. 이 구간이 약간 오르막이었다. 이 오르막을 지나 남원에 떨어지면 표선까지는 쭉 평지. 다시 해안 도로로 이어진다. 이렇다할 관광지도 없고, 세련된 게스트 하우스나 카페 따위도 없는, 옥색빛이 나는 아름다운 바다도 아닌, 촌쓰런 검은 돌만 잔뜩 쌓여 있는 이 바닷가가 나는 참 좋았다.

바닷가에 핀 야생화

달리는 내내 행복이 샘솟았다. 단조로운 하늘 색깔의 카페 건물 하나. 남에게 이로워야 나에게 득이된다고 쓰여진 어느 회사 건물. 왜 모든게 이렇게 정이 가는지. 나중에 제주에서 정말 살고 싶어지면 내가 살게 될 동네는 여기 어디쯤이 될 것 같았다.

5시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6시가 다되서 표선해변에 도착했다. 표선. 이름이 익숙한걸 보면 한번쯤은 와봤을텐데 와서 보니 또 새로웠다. 야영장에 자릴 잡고 텐트를 쳤다. 표선 시내는 생각보다 크고 상점과 사람들로 붐볐다. 야영장도 큰길가에 있어서 차소리도 귀에 거슬렸지만 깨끗하게 정리된 잔디밭이 좋았다. 화장실과 수돗가가 바로 옆에 있으니 곽지해변보다는 편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불을 쓰기로 했다. 수퍼에 가서 가스를 사서 라면을 끓여먹는 동안 세팀이 내 주변에 텐트를 쳤다. 끓인물로 코펠을 닦고 옆 텐트와 잠깐 인사를 나눴다. 차에 캠핑장비를 싣고 제주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관광을 캠핑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다음엔 나도 차를 빌려 제주도 로드트립을 해봐야지.

저녁을 먹었으니 바닷가 산책. 반달 모양의 넓은 백사장으로 금새 물이 들어왔다. 걷다보니 어느새 깜깜해졌다. 8시30분. 일찌감치 씻고 양치하고 누웠다. 차소리와 옆텐트 남자들의 이바구 소리에 뒤척이다가 끝내 이어 플러그를 꽂고 잠이 들었다.



Topic: jeju-bike-touring-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