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넷째날. 일어나자 마자 바닷가를 잠시 산책하고 돌아와 커피 한 잔. 원할 때 어디서든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갑자기 여행의 질이 한층 높아진 것 같았다.
짐은 널부려야 맛
7시에 일어나 9시 해가 쨍 떠오를 때까지 빈둥거렸다. 오늘은 이동거리가 20km 남짓. 오늘도 캠핑을 할 예정이므로 밧데리 관리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 빼고는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간밤에 화장실에 충전기를 꽂아두어서 보조 배터리는 충전이 어느정도 되었지만 핸드폰은 앵꼬. 오전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충전도 하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출발 준비 완료
9시쯤 되자 젖었던 텐트도 금방 말랐다. 하늘을 보니 하루종일 맑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 물론 미세먼지는 여전했지만 이제 그것도 익숙해 졌다. 짐을 정리하고 바로 표선 시내로 이동.
가는 날이 장날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사고 도서관으로 갔는데. 이런. 마침 매주 금요일이 정기 휴일일세. 바로 우도로 가기로.
달린다
성산으로 가는 길에 섭지코지에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달렸는지 섭지코지 이정표를 못보고 지나 어느새 성산일출봉 앞에 와 있었다. 멀리 성산 일출봉이 뿌옇게 보였다. 망할.
짜증났던 우레탄 길
날씨는 맑은데 뷰가 말이 안되게 뿌옇다. 미세먼지도 짜증 나는데 이놈의 자전거 길은 왜 이모양이야. 누가 자전거 길에 우레탄을 깔을 생각을 했는지 참. 페달링이 두배로 힘들다.
유채꽃밭
일출봉은 얼마전에 와서 올라봤으니 이번엔 패스. 바로 우도 선착장으로 가서 표를 끊고 12시 여객선 승선했다. 자전거는 500원을 따로 받는다. 자전거는 계단 및 공간에 기대어 놓고 2층 여객실로 올라오니 왠 장판 바닥. 오늘은 틈틈히 충전을 해야하는 날. 콘센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핸드폰을 충전했다.
우도항 도착
15분쯤 후에 요란하던 엔진 소리가 꺼져 밖을 내다보니 벌써 다왔네?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내려가 자전거로 가보니 굴러가지 말라고 나무로 자전거 뒷바퀴를 괴어놨다. 감사합니다.
Welcome to U-do. 유도? 우도의 영어 표기가 좀 그렇다.
내리자마자 일단 서빈백사 쪽으로 달리기로 하고 오른쪽으로 향했다. 우도도 고도리 방향으로 돈다. 원래 성산 일출봉이 멋지게 보여야 하는 위치인데 보기 싫게 뿌옇다. 항구 앞에는 자전거 대여점과 얄궂은 오토바이 대여점이 늘어서 있었다. 이 풍경에 오토바이라니.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풍경이 희미하다
산호 해변
편의점과 식당이 즐비한 바닷가를 지나서 좀 한갓진 곳에 있는 김밥집이 눈에 띄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김밥 한줄. 잠시동안 전화기도 충전했다.
밥을 먹고 다시 달린다. 천진항까지 가서 우도봉을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본의 아니게 ‘톨칸이’란 곳에 다다랐다. 기대가 없어서 였는지 우연히 오게된 것 치고는 뷰가 좋았다. 우도봉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땡잡았따.
막다른 길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해변으로 내려갔다.
자전거 여행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 달리다가 걷다가. 내맘대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우도봉으로. 요즘은 우도봉이라고 안하고 소머리오름이라고 하나보다. 관광지는 별로 땡기는 곳이 없었지만 여기만큼은 올라가 보고 싶었다. 자전거를 끌고 갈까 하다가 오르막을 오르느라 이미 진을 뺐기 때문에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걷기 시작했다. 절벽쪽으로 걷다보니 졸업여행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길이 생각보다 가파랐다.
자전거 끌고 왔으면 자전거 내팽개쳤을 길.
우도봉에 올라 내려다본 우도가 진짜 우도였다. 오늘 본 풍경중 최고.
다시 내려와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내맘대로 달렸다. 말에게 인사하고 무덤 사이를 지나 어쨌든 길로 빠져나왔다.
검멀레 해수욕장 가는 길
검멀레 해수욕장은 처음 가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깐 와본데더라는. 거의 20년전의 일이니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땐 아무것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무슨 아이스크림집으로 바글바글. 우도를 기념할만한 뭔갈 하고 싶어 자전거를 세워두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간 구경.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가 볼성 사납다.
1320 어느새 우도를 반바퀴 돌아 섬속의 섬속의 섬 비양도에 도착했다. 여기서 캠핑하는게 제주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따로 야영장이라는 표시는 없었지만 대충 눈치를 봐서 자리를 잡았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 평평한 잔디위에. 햐-! 이제 겨우 네시다. 해가 아직 뜨겁다.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가까이 가보니 해녀님(?)들 물질 중이었다. 돌고래 소리 같기도 하고 무슨 노래소리 같기도 한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들락 날락. 나 처음 보나보다 이런 장면. 한참을 서서 구경을 했다.
의자도 없고 돗자리는 눕기엔 좁아서 매트를 텐트 밖으로 꺼냈다. 매트를 꺼내서 밖에 누워있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오늘도 엎드려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피육- 바람 빠지는 소리. 화들짝 놀래 일어나보니 매트 옆구리가 쭉 찢어졌다. 구멍이 난 것도 아니고 아주 제대로 찢어졌다. 텐트펙에 걸려서 찢겼나보다. 이런 망할.
딸려온 수선킷에 스티커가 몇장 있길래 긴급 땜빵. 얼마나 쭉 찢어졌는지 스티커를 비집고 이내 다시 바람이 샜다. 계속 땜빵. 땡빵. 스티커를 다 써버릴때까지 땜빵. 오늘 밤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저녁이 되어가니 섬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배낭을 맨 백패킹 팀. 오만 살림을 다 싸들고 온 오토캠핑 팀. 자전거팀은 한팀도 없었다. 각자의 진영을 구축하느라 바쁜 그들을 구경하며 멍때리는 것 외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자전걸 타고 나가 맥주를 두개 사왔다. 바다를 바라보며 대낮에 마시는 맥주. 키야-.
비양도 일몰이 죽인다던데 해가 지려면 아직 한뼘도 넘게 남았다. 왜 자꾸 잠이 오지..
Topic: jeju-bike-touring-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