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하루
딱히 일찍 일어나야할 이유가 없는 이곳. 할슈타트는 보통 당일이나 1박 정도의 일정으로 충분한 곳인데 우리는 2박을 잡고왔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곳에서 해야 할일은 먹고 놀기. 떠나기 전에 할슈타트를 둘러보면 그걸로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시에 눈을 떴다.
날씨를 체크해보니 계속 눈. 며칠째 해를 볼 수 없으니 아쉽지만 눈 덮인 할슈타트의 풍경도 멋질 것 같았다. 창문의 커텐을 열어재끼니 눈이 펑펑. 얼마나 눈이 온건지 집주변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었다.
낭만적이고 좋긴한데 차가 있으니 걱정부터 됐다. 이렇게 계속 눈이 오는데 우린 차를 끌고 잘츠부르크로 갈 수 있을까? 이 산속에 고립되는게 아닐까? 나머지 일정은 어떻게 될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차가 있으니 여기까지 왔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뭐든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덜 가지고 덜 신경쓰던지, 더 가지고 더 신경 쓰던지, 둘 중 하나다. 둘을 다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차라는 편리함을 선택했으니 그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는 걸로.
모두들 느즈막히 일어나 창밖 풍경을 감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 일정이 없는 오늘, 맘껏 빈둥거릴 수 있으니 모두의 마음은 여유롭다. 솔이랑 나만 빼고 모두 마트로 출동했다. 엄마 껌딱지 송자매빠인 솔이가 나랑 단 둘이 있겠다니, 어지간히 마트 가는게 싫었나보다.
한참 뒷마당 눈더미 속에서 신나게 놀다가 사진을 찍으려는데 핸드폰이 없다. 방금 전 까지만해도 있었는데. 시계가 핸드폰과 블루투스로 연결이 된걸 보아 분명히 집 안 어딘가에 있단 소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걸어보고 시계의 폰찾기와 구글의 폰 찾기를 다해봤는데 어디서도 벨소린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위층과 아래층, 냉장고 안까지 샅샅히 뒤졌지만 보이지 앟았다. 귀신이 곡할노릇.
설마 눈밭에 떨어트린건가. 집 안에 없으니 집 밖에 있단 소리다. 신나서 뛰어 다니다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빠진게 틀림없었다. 눈사람을 만들고 놀던 뒷마당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샅샅이 찾았지만 없다. 집 둘레를 돌아 동선을 쫓아가다보니 저 멀리 보이는 나의 핸드폰. 집 앞 눈 밭에서 간신히 찾았다. 휴.
쇼핑간 팀이 먹을거리를 잔뜩 사서 돌아왔다. 점심은 송자매가 파스타를 만들었다. 송자매에게 이렇게 밥 얻어먹는 날이 오는구나. 호강이다.
점심 이후 자유시간. 딸기랑 솔이는 밖에서 토토로를 만든다고 눈을 퍼날랐고, 겨울이랑 나도 그림을 그리는 틈틈히 나가서 도왔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동심이 되었다.
뒷감당이 귀찮아 노는 것을 포기한 적이 많다.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지만 뒷처리할 일이 귀찮아 처음부터 물에 들어가질 않고, 눈밭에서 노는 것도 너무 재밌지만 옷이 젖고 추울까봐 몸을 사리는 일이 많았다.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면 바로 눈밭과 연결이 되어있으니 나가기 귀찮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번거롭게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이 잠깐 나가서 놀다 추우면 들어오고 젖은 옷과 신발 라지에이터에 말리면 되니 세상 편했다. 눈밭을 구르고 달리고 헤엄치고 신나게 놀았다.
오후에 잠시 눈이 그쳤다. 날씨가 잠시 괜찮아진 틈을 타 할슈타트로 출동하기로 했다. 15분 정도를 살살 달려 할슈타트 타운 주차장에 도착하니 큰 관광버스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긴 한국인들에게만 유명한 곳인가?
차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언니는 한바퀴 돈다고 가고 나머지는 걸어서 View point로 걸어서 이동. 눈 내린 풍경이 멋졌다. 다른 계절의 이곳 풍경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다시 여기에 올 일이 있을까.다시 오기 힘든 거라는 생각에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꼼꼼히 본다.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할슈타트에서 보낸 2시간 동안 모두의 신발이 젖었다. 손 발도 꽁꽁 얼었다. 숙소로 돌아와 젖은 신발과 옷을 말리고 언 몸을 녹이며 저녁 준비. 메뉴는 무려 김밥이다. 한국에서 싸온 김밥 재료와 현지에서 공수한 쌀의 조합이었다. 밥알이 날아다닐지언정 함께먹는 깁밥은 언제나 맛있다. 오븐에 꼬치도 구웠다. 오스트리아 첩첩 산중에서 받기에 황송한 진수성찬이었다. 매끼니를 걱정하는 두 명의 주부 덕분에 나는 덩달아 꼽사리 껴서 잘 얻어먹는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나서 예자매는 숙소의 수영장으로 출동했다. 2박을 하며 리조트의 부대시설을 알차게 이용했다. 너무나 휴가스러웠고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던 하루. 하루 더 있으면 좋으련만.
TL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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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07 2019년 1월 7일 하루종일 숙소에서 빈둥거리며 눈 구경 하고 오후엔 할슈타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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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수퍼마켓 먹거리 €48.18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