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삽질 좀 했다고 그런지 어깨쭉지가 쑤셨다. 창 밖으로 산이 보이길래 눈이 그쳤나 했는데 커튼을 열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소리도 없이 가만히 평화롭게.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눈발은 체크아웃을 할 때 쯤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맘 같아선 하루 더 있고 싶지만 남은 일정이 있으니 떠나야 한다. 게다가 이렇게 눈이 펑펑 오는데 차를 끌고 가야하니 아쉬움과 걱정이 반반이다.
눈발이 너무 거세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차는 어느새 산으로 난 언덕을 오르고 있다. 응? 우리 어디가는거지? 그냥 가기 아쉬워서 무슨 전망댄지 어딘지를 들렀다 가잔다. 뭐라고라. 눈은 계속 내리는데 길은 전혀 제설작업이 되지 않았다. 올라가는 건 그렇다 쳐도 내려올 일이 걱정이었다. 이런 눈속에 산길을 오른다는 것은 대범을 넘어선 위험이었다. 옆에 앉아서 계속 궁시렁대니 언니도 걱정이 됐는지 차를 길 옆에 세웠다. “그럼 어떡하지?”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다시 차를 출발시켰지만 바퀴가 헛돌며 차가 미끄덩 움직였다. 허거덩. 걱정하던 일이 당장 현실로 벌어졌다. “내려서 밀까?'' 호들갑을 떨어대니 “가만 있어봐 쫌”. 핸들을 돌릴 수록 차는 방향을 잃고 쭉쭉 미끄러졌다. 안되겠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뒷바퀴는 제자리에서 열심히 돌고 앞바퀴는 바보.
그제서야 알았다. 우리가 빌린 차는 후륜이라는 것. 인터넷을 찾아보고야 후륜차가 눈길에 맥을 못춘다는 것을 알았다. 포시즌 타이어라고 하여 괜찮을 줄 알았다. 차를 빌려놓고 차에 대해 너무 몰랐다 싶었다. 액셀을 밟을수록 바퀴는 제자리에서 더 세게 돌아갈 뿐 앞으로 단 1cm도 움직이지 않았다. 송자매까지 나와서 4명이서 차를 밀었지만 헛수고였다. 손으로 눈을 치우고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 바퀴 밑에 깔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뒷바퀴가 추진을 못하니 핸들은 무용지물, 완전히 컨트롤을 잃었다.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차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 차는 쭉쭉 뒤로 밀려서 도로 한가운데 사선으로 서있고 눈은 계속 쏟아졌다. 난감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번뜩 생각이 나질 않았다. 작은 차 몇대가 우리를 지나쳐 올라갔다. 저런 코딱지만한 차들도 쌩쌩 잘가는데 쩝.
그때 막둥이의 아이디어. 후진을 해서 내려가보자! 추진력 있는 뒷바퀴를 앞잡이 삼아 움직일 방법은 후진뿐이었다. 살살 후진을 해보니 차가 움직였다. 차가 앞이든 뒤든 굴러가는 것 만으로 땡큐였다. 비상등을 켜고 막둥인 차 앞 쪽 나는 차 뒤쪽에서 엄호. 걸어내려 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풍경이 너무 멋졌다. 이 상황에 풍경이 눈에 들어오다니.
사고라도 날까 걱정했는데 무사히 큰길까지 내려왔다. 한숨 돌렸다. 눈속에서 진을 빼고 나니 눈이 무서워졌다. 이런 날씨에 이런 차를 끌고 어딜 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잘츠부르크로 직행하기로. 눈은 계속 내리는데 길은 제설이 되지 않았다. 또 오르막길이 나올까 조마조마해 하며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언니의 마그넷을 사고 나서 다시 출발했는데 이번엔 계기판에 빨간 배터리 아이콘이 떴다. 독일어로 된 차량 메뉴얼을 찾아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무슨 벨트에 문제가 있으니 운전하지 말고 당장 가까운 서비스센터를 찾으란다. 기분 때문인지 왠지 차가 덜덜거리는 것 같았다. 언니가 말했다. “느낌이 이상해 차가 곧 설 것 같아”
산넘어 산이었다. 눈덮인 이 시골에 정비소가 있을리도 없고, 차를 세웠다가 시동이라도 안걸리면 또 낭패다. 렌트카 오피스에 전화를 걸어 설명하니 차가 굴러가니 일단 잘츠부르크 오피스로 오란다. 오는 도중 차가 서거나 문제가 생기면 차를 빌린 빈 오피스에 전화를 하란다. 남은 일은 그저 잘츠부르크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 잘츠부르크로 가는 큰 도로는 제설작업이 되어 있었다. 눈도 잦아들었다. 창밖 풍경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제까지 참 좋았는데 싶었다. 어제까진 눈이 그렇게 좋더니 오늘은 꼴도 보기 싫다. 실컷 잘 놀아놓고 빨리 차를 반납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올라왔다. 또 한편으론 중간중간 느긋하게 구경하며 가고 싶었다. 하지만 차로 생기는 문제는 피하고 싶었다. 웃긴다. 복잡한 마음으로 달린다.
잘츠벅
두 시간 만에 무사히 잘츠벅 시내에 진입했다. 차를 반납하고 새 차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라 일단 숙소에 예자매들을 먼저 내려주고 움직이기로 했다. 숙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잘츠부르크 시내이고 렌트카 회사에서 가까우니 여기서는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에라 모르겠다 시동을 껐다.
후딱 체크인을 하고 시동을 걸었는데 차가 멀쩡했다. 깜빡이던 빨간 등도 사라지고 멀쩡해졌다. 허망하여라. 조마조마하며 달려온 길을 생각하면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어서 다행이라고 위로하며 차는 숙소 주자창에 잠시 세워두고 밥부터 먹기로 했다.
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언제 무엇이 문제였냐 싶었다.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방으로 올라가서 짐부터 풀었다. 오늘은 도미토리다. 6인용 도미토리를 하나 잡았다. 솔이는 모두 한 방에서 자는게 재밌는지 신났다. 짐만 내려놓고 다시 출발.
눈도 그치고 한쪽에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날이 잠시 갠 듯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 근처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움직이기로 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 중세시대의 성으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산꼭대기에 서 있다. 신기하긴 했다.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겉에서 사진만 찍고 뷰만 보고 올 생각이었다. 유럽의 건물은 밖에서 볼 때 멋질 뿐, 안에는 별로 관심없는 내 취향이기도 했다.
지도를 따라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음. 혹시 저 앞에 있는 것은 티켓 오피스? 입장료가 없다고 했는데 티켓 오피스가 떡하니 길을 막고 있었다. 이럴 때 갈등 때리는거다. 미리 입장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왔으면 그냥 표 끊고 들어가면 되지만 없다고 알고 왔는데 있으니 갈등이다. 들어갈 것 인가 말것인가. 게다가 입장료엔 오디오 투어를 비롯해 우리가 필요없는 몇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성 내부도 볼 생각이 없었는데 오디오 투어가 다 뭐람. 쓸데 없이 돈을 쓰는것 같아서 더 갈등이다. 입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주차까지 하고 여기까지 올라온게 아까워 입장하기로 했다. 여행에서 보는데 쓰는 돈은 아끼지 말자.
성은 뭐 그냥 그랬다. 날이 좋았으면 달랐을까. 안내판이 시원찮아 어디가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오디오 투어도 화장실에 갔다가 우연히 입구를 찾았다. 녹음된 오디오 기기를 받아들고 입장, 근엄을 떠는 경비 아저씨 한 명이 동행했다. 마치 이 요새의 경비병인냥 들어가는 방마다 열쇠를 풀었다 잠궜다. 한 때 고문실이었다는 방에 이르자 불현듯 죄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은 지루했고 이해도 안가고 재미도 없었다. 막 지루해지려는데 마침 요새의 꼭대기에 올랐다. 저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였다. 경비병에게 물어보니 알프스란다. 오 알프스? 내가 아는 그 알프스? 빈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마음에 드는 곳이었고 더 있고 싶었는데 경비병 아저씨가 얼렁 내려가라고 손짓했다.
야경까지 보고 싶었지만 추웠다. 막둥이가 가자고 재촉했다. 걸어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막둥이가 혹시 우리 티켓에 푸니쿨라가 포함된 게 아닌지 물었다. 푸니쿨라? 나는 아까 쓱 보고 모르는 단어라 그냥 넘겼는데, 땅과 성을 직통으로 연결해주는 엘리베이터 같은거다. 혹시나 해서 푸니쿨라에 가서 확인해보니 티켓에 편도가 포함된게 맞단다. 추운 날씨에 걸어갈 뻔했는데 막둥이의 무의식에서 올라온 질문이 우릴 도왔다. 오늘 현막둥이 쫌 쓸만하구만.
오늘의 마지막 임무, 렌트카 반납. 노약자들을 숙소 앞 쇼핑센터에 내려주고 언니랑 둘이 렌트카 오피스로.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오피스로 가니 6시 10분 전. 직원이 아직 퇴근 전이라 서류에 싸인을 하고 키를 반납했다. 문을 나서는데 느껴지는 이 해방감. 만세!
차를 반납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구글맵에 속았다.지도 보고 따라갔는데 길 끝에서 사유지로. 한참을 돌았다. 언니는 질퍽한 눈길을 걷느라 신발이 다 젖었다. 꽁꽁 언 발로 한참을 걸었다. 오늘 누구보다 맘 고생은 언니가 했을텐데 피곤하다 힘들다 어떻다 한 마디 말이 없다. 나도 하루종일 이래저래 신경 쓴 탓인지 목이 뻐근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맥주 두 개를 마시고 일등으로 뻗었다.
TLTR
- Day08 2019년 1월 8일 폭설 속 언덕길에서 개고생. 오버트라운에서 잘츠벅으로 직행. 숙소 체크인 후 호엔잘츠부르크 성 (Fortress Hohensalzburg) 갔다가 렌트카 반납(사진)
- 지출
잘츠부르크 마이닝거 2박 (호텔스) $196.03
잘츠부르크 시티 택스 €12.40
6인 점심 외식 (핏자) €35.19
수퍼마켓 간식 €6.04
6인 잘츠부르크 성 입장료 €30.30
주차비 €6.50
수퍼마켓 (저녁 끼니) €53.94
렌트카 주유 €45.45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