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y Me
여자 여섯의 여행 #09 맹숭맹숭 잘츠부르크
9 J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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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뭔가 퍽하는 소리. 송자매 중 하나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싶었다. 불을 켜보니 다행히(?) 솔이였다. 다행이라 생각했던 건 송자매는 2층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솔이는 1층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 솔이는 울다 잠이 들었고 나도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7시30분까지 늦잠을 잤다. 오늘은 모두 자고싶은 만큼 자는 날. 사진을 정리하다가 살금살금 짐을 챙겨서 1층으로 내려왔다. 구석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송겨울. 친구들이랑 게임을 하는지 싱글벙글 중얼중얼. 그래 이 소중한 아침 시간은 각자 하고싶은 일을 하는 걸로.

이번 여행에서 기록자로써의 나의 임무 몇 가지. 사진을 취합할 구글 앨범 공유 및 관리, 핸드폰으로 VLog 찍고 편집해 공유하기 , 고프로로 틈틈히 영상 찍기. 이 중 고프로가 말썽이다. 야심차게 들고온 랩탑에서는 64G sd 카드를 읽지 못하고 고프로에 usb 케이블을 연결하면 사진을 읽지 못했다. 골치 아픈 상황. 한 시간을 넘게 끙끙대다 결국 구글 검색 한 번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왜 이 문제가 나만 겪는 이슈라고 생각했을까. 이 세상에 새로운 이슈는 없고 나만 겪는 문제도 없는 것을.

아침에 북적거리던 라운지는 10시가 지나자 조용해졌다. 모두가 체크아웃을 마친 시간 슬슬 일어나 어제 삶아놓은 계란, 라면, 빵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12시가 넘어서 숙소를 나섰다. 눈비가 부슬부슬.

버스정류장에서 인당 4유로를 주고 24시간 패스를 끊었다. 버스를 타고 미라벨 정원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곳이라는데 겨울이라 썰렁하기 짝이 없다. 눈으로 얼룩덜룩한 정원이 지저분해보였다. 딸기가 많이 기대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무룩. 겨울엔 참 볼게 없구나. 그나마 눈이라도 실컷 봤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휑한 정원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썰렁한 정원 풍경
썰렁한 정원 풍경

걸어서 다리를 건넌다. 자물쇠가 잔뜩 걸려있는 다리. 그냥 지나쳤을 법도 한데 오늘은 왠지 이 다리의 자물쇠들을 감상하며 걸었다. 세상엔, 아니 잘츠부르크엔 이렇게 많은 연인들이 있구나.

8년 전에 사량을 약속한 이들은 지금 함께 있을까.

잘츠벅 구시가로 넘어왔다. (한국어 표기는 ‘잘츠부르크’라고 쓰는데 나한테는 ‘쌀스벅’으로 들린다. 둘을 합쳐서 ‘잘츠벅’으로 쓰기로 한다.) 게트라이데 거리로 접어드니 갑자기 다른 도시에 온 것 같은 기분. 딱 적당한 폭의 거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딱 유럽 느낌이다. 걸음으로 재보니 약 6미터.

게트라이데 거리
게트라이데 거리

은은하게 통일된 건물과, 과하지 않은 상점의 간판들이 맘에 들었다. 건물 사이에 매달려 있는 장식물들이 이 거리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같은 듯 다른 형태의 건물들은 묘하게 삐뚤삐뚤 했고, 골목의 끝은 알듯말듯 굽어져 있었다.

이 거리 어디에 모짜르트에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가본데 우린 모짜르트엔 관심 없다. 모짜르트에겐 미안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마그넷.

언니의 마그넷을 사는 것으로 우리의 한 도시가 완성된다. 모든 도시를 걸을 때 우리가 염두하는 것은 언니 맘에 쏙 드는 마그넷을 사는 것. 마음에 드는 마그넷을 찾기 위해 상점들을 기웃댄다. 무작정 걷는 것 보다 뭔가 목적이 있는 것이 도시를 둘러보는데 나으니까.

아무리 모짜르트의 도시지만 이건 쫌.
아무리 모짜르트의 도시지만 이건 쫌.

골목 끝에 나타난 레지덴츠 광장(Residenzplatz). 골목에 있다 광장으로 나오니 추워졌다. 좀 따뜻할까 해서 잘츠벅 대성당에 잠시 들어갔다 나와, 캐피텔 스퀘어(Kapitelplatz)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날씨가 거지같다고 핑계를 대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5시도 안되서 오늘의 일정이 끝났다. 숙소로 가기 전 어제 갔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언니가 몇군데 맛집을 추천했지만 다 귀찮았던 막둥과 내가 어제 먹었던 푸드코트를 선택했다. 때로는 푸드코트에서, 때론 레스토랑에서, 때론 숙소에서. 그때의 상황에 맞춰 끼니를 해결하지만 늘 배가 부르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자유시간엔 완성하지 못한 할슈타트 풍경을 마무리 했다. 그동안 망칠까봐 하지 못했던 수채화에 도전. 대충 그린 선에 막 칠하는 물감. 나름 느낌있는 그림이 나왔다. 수채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내일은 독일에 가니 하네뮬레 양장 스케치북을 하나 사야겠다.

오스트리아를 떠나며

오스트리아의 세개의 도시(빈, 오버트라운, 잘츠벅) 중 가장 좋았던 곳은 단연코 오버트라운. 빈과 잘츠벅은 그저 오버트라운을 가기 위해 앞뒤로 거쳐가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오스트리아는 흐린 날씨가 문제였다. 빈이나 잘츠벅이 그런 하찮은(?) 도시들이 아닌데, 날씨가 협조를 안해줬다.

날씨가 개떡같으면 내 기분이 개떡같고, 내 기분이 개떡같으니 온 세상이 다 개떡같아지는 원리다. 추우니 몸이 덜 움직이게 되고 덜 보게 되고 결국 덜 남게 된다. 오버트라운 폭설 같은 드라마틱한 추억을 준 도시 외에는 기록이 없으면 기억 조차 나지 않게 된다. 빈과 잘츠벅은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지만. 혹시 알아? 나중에 좋은 날 다시 와 새로운 추억을 만들게 될지.

TLTR

  • Day09 2019년 1월 9일 느즈막히 일어나 비오는 가운데 잘츠부르크 관광. 미라벨 정원, 게트라이데 거리,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둘러보고 일찍 돌아와 숙소에서 자유시간 (사진)
  • 지출
    6인 잘츠부르크 교통 패스 €18.00
    6인 점심 외식 (푸드 코트) €36.30
    쇼핑 (기념품) €10.00
    맥주 3개 €2.75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