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y Me
여자 여섯의 여행 #05 게을러도 괜찮아, 빈
5 J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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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하루 왠종일 눈이 왔다. 눈이라도 펑펑 왔으면 좋았을 걸 눈도 아닌 것이 비도 아닌 것이 하루종일 왔다.

5자매는 느즈막히 일어나 미술사 박물관에 가고 나는 나는 숙소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이유? 미술관에 별로 가고싶지 않았고, 오늘은 주말이라 더 붐빌 것 같아서. 그리고 생리때문인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이런 날씨엔 음악 들으면서 책이나 읽고 늘어지게 쉬면 좋을 것 같았다.

중무장을 하고 미술사박물관으로 출동한 5자매가 보내온 사진은 처참했다. 비바람에 우산은 아무 소용이 없고, 헝크러진 머리와 발과 옷과 신발까지 쫄딱 젖은 꼴. 아 이런날은 집에 있어야 해.

오전 내내 숙소에서 빈둥거리다 보니 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딱히 어디 가고싶은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빈 시내 한복판에 숙소를 잡았으니 시내 구경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오스트리아 빈은 멜번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를 다투는 도시이기도 하다. 살지는 못해도 거리를 걸으며 공기라도 마셔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산을 들고 숙소를 나섰다. 창문을 열고 느끼던 날씨는 3인칭 시점이라 나름 낭만적이었는데. 그 날씨 속에 들어오니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구만. 우산은 뒤집어 질 듯 바람이 거셌고, 고개를 들면 눈비가 얼굴을 때렸다. 날씨가 이런데도 길에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하우스
눈 비가 뒤섞여 철벅이는 거리
눈 비가 뒤섞여 철벅이는 거리

그나미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면 국립 도서관과 성 스테판 성당인데, 도서관은 갔더니 줄이 길다. 줄 서서 들어갈만큼 궁금하진 않았기에 패스. 성당은 밖에서 사진 한 장 찍는걸로 만족. 이런 날씨엔 아무리 대단한 성당도 별로다. 안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날씨가 여행의 많은 것을 좌우한다. 실내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특히 더 그렇다. 날씨가 좋으면 풍경도 좋고 기분도 좋다. 날씨가 거지 같으면 기분도 똑같다. 이렇게 구질맞게 비오는 날은 참으로 별로다. 나가기도 싫고 구경하기도 싫고 걷기도 싫다. 날씨란 통제 불능의 것, 운이 없는 걸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런 날씬 싫다. 오늘 참 별로다.

명동 거리를 걷는 기분
명동 거리를 걷는 기분

숙소로 돌아오는 길. 명동 한복판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 피렌체의 그 거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은 이만하면 됐다. 속성으로 끝냈다.

숙소에 들어와서 젖은 옷을 말리고 있으려니, 미술사 박물관 관람을 마친 5자매가 어제 못먹은 슈니첼 집에 간다고 연락이 왔다. 빈을 대충 둘러본 나로썬 제대로 된 슈니첼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피그뮬러 슈니첼 레스토랑
피그뮬러 슈니첼 레스토랑

피그뮬레라는 레스토랑이 빈의 대표 슈니첼 맛집이란다.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한참을 문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길을 잃고 주변을 헤매다 가까스로 도착한 막둥이가 ‘망할 슈니첼!’ 이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었다. 그 망할 슈니첼을 먹기 위해 주문을 하고도 30여분을 기다렸다.

신발 밑창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무렵 음식이 나왔다. 슈니첼은 그냥 돈까스 같은거다. 시장에서 파는 얇은 돈까스. 특징이 있다면 엄청 크다는거. 접시를 덮고도 남는 큰사이즈로, 둘이 하나를 먹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소스도 야채도 없는 돈까스를 먹으려면 맥주가 필수였다. 맥주와 샐러드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눈발 날리는 거리를 걸어 숙소로 오는 길에 성스테판 성당 야경을 스치듯이 지났다. 낮에 걸었던 거리는 밤이 되니 더 휘황찬란해졌다.

불 밝힌 거리
불 밝힌 거리

마트에 들러 물과 맥주를 샀다. 이곳에서 가장 좋은 것은 맥주가 싸다는 것. 슈퍼에서 사면 1유로도 안한다. 500ml 큰 맥주 하나에 천원 꼴. 나에겐 천국이다. 날씨가 거지같은 천국.


TLTR

  • Day05 2019년 1월 5일 오스트리아 빈 시내 관광. 5자매는 미술사 박물관에 가고 나는 숙소에서 빈둥거리다 오후에 만나서 외식. (사진)

  • 지출
    5인 미술사 박물관 €30.00
    오디오 가이드 €8.00
    6인 저녁 외식 (피그뮐러) €80.90
    쇼핑 (기념품) €12.75
    간식 €4.21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