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카 빌리기
빈을 떠나 오스트리아의 두번째 도시, 내가 가장 기대하는 할슈타트Hallstatt로 이동하는 날이다. 차를 빌렸다. 렌트카를 공항에서 픽업해야해서 언니랑 둘이 숙소를 나섰다. 원래는 막둥이랑 언니랑 가고 나는 숙소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막둥이가 면허증을 안가져오는 바람에 언니랑 동행할 주자가 바뀌었다.
9시쯤 숙소를 나와 급하게 메트로를 탔다. 갈 생각이 없었기에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알아보지도 않았다. 무작정 뛰어 내러와보니 막 승강장에 들어오는 열차. 그때야 우리가 티켓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승차. 얼떨결에 무임승차로 두 정거장을 이동했다. 두 정거장이 아득히 길게 느껴졌다.
환승역인 Wien Mitte역에서 내려 일단 공항가는 티켓부터 끊었다. 근데 어디로 가야하지. 낯선 곳에서 길을 물을 땐 유니폼을 입은 사람에게 묻는게 좋다.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은 곧 근무중이라는 소리고 적어도 그 주변을 잘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니까. 경찰이나 시큐리티가 가장 좋지만 그런 사람이 없으면 목에 아이디 카드를 걸고 있거나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목에 아이디를 걸고 있는 한 여자에게 공항가는 S7은 어디서 타야하는지를 물었다. 알려주는 방향의 승강장으로 내려가보니, 응?
기차 한대가 건너편 승강장에 들어와 있다. 저건가?. 물어볼 사람은 이불을 들고 서 있는 노숙자 뿐. 전광판을 찾아서 보니 저 열차가 우리가 타야할 열차 맞다. 떠나는 열차를 바라보며, 때로는 직접 찾아보는게 물어보는 것 보다 더 정확하다.
30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서둘러 오느라 느끼지 못했던 빈의 상쾌한 아침. 하루종일 내리던 눈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에 해가 떴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고 언니는 마트에 구경을 갔다. 우리는 함께 여행하지만 각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다르다.
길을 찾는 것도 그렇다. 낯선 곳에서 익숙치 않은 언어로 쓰여진 표지판을 볼 때, 언니는 보통 그림을 보고 찾는 반면 나는 글자를 보고 찾는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짐을 맡기기 위해 라커를 찾아야 했었다. 난 온통 독일어로 된 표지판 속에서 감도 못잡고 있는데 언니가 가방 아이콘을 찾아내어 우릴 이끌고 갔다. 신기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할 때는 혼자 여행하는 것과는 달리 무척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먹는것이 다르고, 보고자 하는 것이 다르고,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고, 길 찾는 방법이 다르고,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다르고, 돈을 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거다. 그래도 한가지 같은 것은 여행의 목적이다. 모두가 안전하게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것. 그래서 역할과 예산과 일정이라는 것이 있고, 매일 회의가 필요한거다.
누구 한 명이 여행의 모든 것을 책임 질 수도 없고, 함께 여행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같이 할 필요도 없다. 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하기 싫은 것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다를 땐 각자 하면 되는거고, 함께하고 싶을 땐 함께하면 된다. 물론 대화가 우선이다.
그렇게 각자 시간을 보내고 열차 시간에 맞춰 다시 만났다. 예자매들이 화창하게 날이 개인 빈 시내를 즐기며 사진을 보내왔다. 오늘이라도 날씨가 좋아졌으니 다행이다. 그래 너희들이라도 즐겨라.
공항에 내려 렌트카 사무실로 가니 복잡한 시간대를 피했는지 우리 말고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예약했던 렌트카 수령. 언니는 차를 가지고 체코 국경을 넘을 기세였다. 나에게 렌트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긴 때문인가. 말리고 싶었다. 추가로 요금을 내야 하기도 했지만, 그러면 최소 6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하고 야간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무리데쓰. 국경을 넘는건 포기했다. 대신 이 차는 잘츠부르크에서 반납하기로 했다.
차키를 받았다. 우리가 예약한 차는 7인승인데 가보니 9인승 승합차다. 나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인데 언니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이럴 땐 내가 쫄보고 언니는 참 대범하다.
일단 차를 꼼꼼히 공부하고 연습 삼아 주차장을 두어바퀴 돌았다. 후방카메라가 없는데다 익숙하지 않은 사이즈라 주차가 힘들었지만 하면서 익숙해져야할 일이었다. 쫄아 있는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운전은 파킹이랑 길 찾는게 전부야.”
뭐지 이 자신감은. 갑자기 언니의 안전운전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래 파킹이랑 길찾기. 함께 하는 여행이니 주차할 때 누군가 뒤를 봐주면 되고, 네비도 있고 구글맵도 있으니 별로 걱정할 게 없었다. 쫄지 말자.
오버트라운으로 이동
차를 끌고 숙소에 와서 노약자들을 실었다. 출발.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시내를 벗어나자 그제서야 좀 풀리고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 어디인 것 같기도 하고. 좀 외곽으로 나오니 눈 덮인 풍경이 많아지고 여행 온 느낌이 들었다. 날씨도 활짝 개었다. 겨울이가 겨울수련회 가는 기분이라며 능청을 떨었다. 나만 빼고 모두 신난 것 같았다.
버거킹이 보여 급히 차를 세워 점심을 해결했다. 세상 길고 느린 줄에서 한참을 기다려 주문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으려니 마치 로드무비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나오니 날씨가 다시 흐려졌다. 날씨 좋아서 기분도 좋았는데. 눈비가 뿌리니 다시 긴장모드로.
중간에 길을 한 번 헤맸다. 언니 핸드폰의 구글맵이 가르키는 길과 내 구글맵이 가르키는 길이 달랐다. 1시간 30분 전에 우리가 가려던 길이 통제되어서 구글이 새로운 길을 알려줬는데, 언니 구글맵은 오프라인으로 해두어서 업데이트가 안되었던 거다. 갑자기 길이 통제됐다고 하니 걱정이 되기 시작. 눈이 많이 와서 일까. 오늘안에 갈 수 있을까.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자 범상치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뭔가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는 느낌. 커다란 암벽 사이를 달리고 있으려니 뉴질랜드에서 밀포드 사운드 가던 길이 떠올랐다. 눈이 있으니 스위스의 아이거 북벽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했다.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너무 멋진 풍경에 감격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감당하느라 그런지,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해는 떨어졌지만 다행히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을 했다. 눈이 잔뜩 쌓인 풍경. 아주 비싼 리조트에 온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좋은 나무 냄새가 났다. 깨끗했고 따뜻했다. 환영받는 느낌에 평화가 찾아왔다. 모두가 숙소를 너무너무 맘에 들어했다.
왠지 이번 여행은 숙소에서 숙소를 옮겨다니는 것이 목적이자 임무처럼 느껴졌다. 인원이 많아서일까? 예자매가 있어서일까? 이상하게 숙소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뭔가 할일을 다 한것 같은 느낌. 오늘은 렌트카 때문에 신경 쓸 게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쌀로 밥을 지어 저녁을 먹고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평소 같았으면 마트로 출동했을텐데 오늘은 산골짜기에 있으니 그럴 수가 없다. 저절로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는 순간, 모여 앉아 한동안 그림을 그렸다.
맥주를 안사와서 안타까워 했는데 막둥이가 빈 숙소에서 준 웰컴 와인을 챙겨왔다며 먹가방에서 와인을 꺼냈다. 브라보. 와인 한잔을 마시고 기분좋게 탕 목욕. 욕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으니 노천 온천이 따로 없다. 하루의 긴장이 싹 풀렸다.
TL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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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06 2019년 1월 6일 빈에서 렌트카 빌려 타고 할슈타트(오버트라운)으로 이동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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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공항까지 메트로 S7 €4.60
커피 €1.90
4인 간식 (자허) €21.10
6인 렌트카 2박3일대여료 ₩290,093
렌트카 완전자차 보험료 ₩94,035
6인 점심 (맥도날드) €36.44
6인 숙소 (Dormio Resort Obertraun) 2박 €425.00
6인 오버트라운 시티 택스 €16.00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