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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섯의 여행 #03 칼바람 속 온천, 야경
3 J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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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니 온천

온천에 가는 날.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딱히 따로 할 일도 없었다. 숙소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쯤 걸렸나. 버스에서 내리니 불어오는 칼바람. 세체니 온천하면 야외 온천인데, 이런 날 야외 온천이라니, 미친 짓이다 싶었다.

티켓을 어찌저찌 끊고 입장했는데 어리둥절. 시스템을 알 수 없으니 바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슬리퍼도 필요하고 큰 타월도 필요했는데 난 아무 준비 없이 덜렁덜렁 왔다. 빌려온 수영복은 캡이 없고, 슬리퍼는 obligation이라고 써있는데 우리는 슬리퍼가 없이 다 맨발이고, 아무도 안내해 주는 이 없고, 나는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고. 당황스러움이 조금씩 짜증으로 변했다.

눈에 띄는 형광색 브라자를 차고 어리버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옷을 다시 갈아입고 시스템 파악에 나섰다. 실내 욕장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찾았고, 분위기를 대충 보니 슬리퍼는 없어도 될 것 같았다. 다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양들을 이끌고 미리 봐둔 경로로 입장.

탕은 뜨뜨미지근 했고 유황 냄새도 역겨웠다. 아 이런데 2만원이나 내고 오다니. 탕 밖은 춥고 탕 안은 미지근했다. 어쩔 수 없이 사우나에서 시간을 보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가장 따듯하고 좋았다.

주고 들어온 돈이 아까워서 야외 욕장에 나가보기로 했다. 문을 열고 나오니 바람이 쌩. 바닥은 살얼음으로 미끄러웠다. 먼저 나간 송자매를 간신히 찾았다.

야외 욕장의 소박한 유수풀
야외 욕장의 소박한 유수풀

유수풀에 다 모여서 몇 바퀴 돌고나니 배가 고파졌다. 가고 싶을 때쯤 먼저 가자고 해주는 막둥이가 있어서 참말로 다행이다. 두 시간쯤 놀고 퇴장. 예자매는 좋아했지만 나는 어제 오늘 쓴 돈 중 가장 아까운 돈.

온천보다 더 좋았던 온천 마당 잔디밭
온천보다 더 좋았던 온천 마당 잔디밭

숙소로 돌아와 젖은 짐을 내려놓고 송자매팀은 어제 급하게 건넌 세체니 다리를 간다고 나섰고 솔이네도 따라나섰다. 나는 이따 마켓에서 조인해 야경을 보러 가기로 하고 혼자 숙소에 남았다. 영상을 정리하고 마켓으로 걸어서 출동. 혼자 길을 걸으면 혼자 여행온 것 같다.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

마켓에 도착하니 언니가 한 걱정이었다. 오늘의 야경은 어제보다 난이도가 있는데 막둥이가 이미 지쳐서 숙소에 데려다줘야겠다고.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에겐 쇼핑이 약이라는 것을. 알디Aldi에서 쇼핑을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야경보러 출발. 언덕에 오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다리는 트램을 타고 건넜다.

겔레트르 언덕

트램에서 내려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겔레트르 언덕을 올랐다. 사방 팔방으로 뻗은 길이 여러가지라 골라 걷는 재미가 있었다. 일찌감치 솔이에겐 나무 막대기를 하나 쥐어줬다. 상상속에서 어떤 도구로도 변신하는 마법의 막대기다.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힘들다고 하지도 않고 혼자서도 엄청 잘논다. 이름하여 매직스틱.

막둥이에게 쇼핑이 약이라면 솔이에겐 막대기가 약이다.
막둥이에게 쇼핑이 약이라면 솔이에겐 막대기가 약이다.

어제보다 높이 올라와서인지 어제보다 추웠다. 올라올 땐 갈수록 멋진 풍경에 추운줄도 몰랐지만 야경을 기다리다보니 추위가 느껴졌다. 번쩍이는 국회의사당은 보이지 않았지만 빌딩과 다리에 불이 밝혀지며 조금씩 야경이 완성되어 갔다. 추웠지만 멋졌다.

아쉽지만 더 추워지기 전에 하산. 올라올 땐 몰랐는데 우리가 언제 이만큼을 올라왔었는지, 내려오는 길은 한참 길게 느껴졌다. 송자매 팀은 굴라쉬를 한 번 더 먹으러 갔고, 짠 음식이 별로였던 솔이네 팀은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각자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적인 여행. 바람직하다.


TLTR

  • Day03 2019년 1월 3일 부다페스트 관광 (세체니 온천Széchenyi Thermal Bath,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 Hall, 겔레트르 언덕Gellért Hill) (사진)

  • 지출
    6인 세체니 온천 Ft31,700
    1인 수영복 대여 Ft3,000
    3인 저녁 외식 Ft9,537
    쇼핑 (기념품 ) Ft1,190
    알디 간식 Ft3,550
    그룹 패스 Ft3,300
    화장실 Ft250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