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단 기차역이 너무 복잡해서 정신 산만했고, 처음 만난 체코 사람인 우버 기사가 영 싸이코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숙소의 와이파이 속도가 56k 모뎀보다도 느려 첫날 밤부터 속이 터졌다.
할 일을 하려 6시에 일어났는데 느려터진 인터넷에 애가 타서 커피만 3잔이나 마셨다. 아침에 하면 좀 다를까 싶었는데 다를게 없었다. 안될라면 안되던가 될라면 되던가, 될랑 말랑 뜰랑 말랑, 됐다 안됐다 속이 터졌다. 사진도 백업이 안되고, 영상도 올릴 수 없다. 나의 루틴에 큰 차질이 생겼다. 인터넷이 안되는 것 뿐인데 숙소 전체가, 프라하가, 체코가 맘에 안들었다. 뿔이 단단히 났다.
9시에 솔이랑 막둥이가 일어났고 우리의 하루도 시작되었다. 서방들 올 준비에 두 마누라들이 바쁘다. 가져올 것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것, 전달 사항도 많다. 각자 다른 비행기로 다른 도시를 경우해서 다른 시각에 도착하기 때문에 알려줄 것도 많았고, 대가족이 먹어야할 식량도 더 사고, 준비가 미흡했던 물건들도 챙겨야 했다. 나는 만년필 잉크와 놓고 온 안경을 부탁했다.
오늘은 프라하 시내관광. 숙소를 나서니 어머나 상쾌한 아침! 어제 그렇게 눈이 오더니 땅만 촉촉하게 젖었을 뿐 기온도 따뜻하고 코끝에 느껴지는 공기는 무척 상쾌하다. 날이 좋으니 다들 기분이 상쾌. 밤새 기온이 많이 올라간 듯 비도 안오고 파란 하늘도 보인다. 밤과는 또 다른 느낌의 거리를 구경하며 걷는다.
카를교 Chales Bridge
다리위는 프라하의 관광객이 다 모인 듯 복닥복닥 했다. 다리 양 옆으로 멋드러진 동상들이 서있다. 뭐라더라. 어제 꽃할배에서 봤는데 하루도 안되서 까먹었다. 찾아보려다 우리 중 아무도 그런것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냥 이 분위기를 즐기기로 했다.
다리 위는 생기넘치고 발랄했다. 물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그 가운데 누군가는 작품을 팔고, 누군가는 음악을 연주하고, 흥이 난 누군가는 나와서 춤을 췄다.
해가 좀 나면 좋으련만 해는 구름 뒤에 아주 교묘하게 가려져 아주 가끔씩만 해가 나왔다. 그때마다 강건너 언덕위의 프라하성이 그 은빛 햇살을 받으며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난 성은 그만 가도 되는데, 그래도 강을 다 건너왔으니 프라하성까지 슬슬 걸어가 보기로 한다.
다리 끝의 아치형 타워 너머에 보이는 풍경은 또 새롭다. 어딘가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 아치 사이로 보이는 풍경에 하트 뿅뿅.
콘크리트도 아스팔트도 아닌, 자잘하게 깔려있는 돌들과, 길양 옆으로 무심한 듯 아닌듯 애매한 각도를 뽐내며 조화롭게 늘어선 은은한 파스텔 빛깔의 건물들. 길 가에 세워져 있는 올드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중세 유럽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이 와중에 겨울이는 에버랜드에 온 것 같다고 농을 친다. 어제 별로였던 프라하가 금방 좋아졌다. 히히.
프라하 성 & 성 비투스 성당
구경하면서 걷다보니 금방 성에 도착했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인지 입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인파가 좀 빠지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먼저 한바퀴 둘러보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성으로 입장했다.
날씨 때문인지 잘츠부르크 성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현존하는 가장 큰 성이라는 말을 어디서 봤는데, 난 실은 성보다 성 안에 있는 성 비투스 성당이 궁금했다. 꽃할배에서 백일섭은 이 성당을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버금간다고 했지만 그정도는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성당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너무 커서 앵글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성당은 앞면과 옆면과 뒷면이 완전히 다른 건물 같았다. 앞면이 쭉쭉뻗은 직선으로 남성적이었다면, 뒷면은 둥글둥글 여성스럽달까. 앞도 멋지고 옆도 멋지고 뒤도 멋졌다.
성을 걸어 내려와 다시 강을 건넌다. 해는 여전히 구름뒤에 있었지만 은은한듯 강렬했다. 은은하게 윤슬이 빛났다.
구시가지
숙소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고 다시 출동. 올드타운 스퀘어, 시계탑, 그리고 하멜 시장을 보는 것 까지가 오늘의 공식 일정이다. 숙소에서 나와 골목을 꼬불꼬불 지나 구시가쪽으로 걷다보니 동화속에나 나올 것만 같은 건물들로 둘러 쌓인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에 오면 기분이 좋다. 특히 이렇게 멋진 건물들에 둘러싸인 광장이 나는 좋다. 자연적이지는 않지만 이국적이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있다. 잔잔하게 깔려있는 돌블럭들이 그 클래식한 분위기를 더했다.
광장엔 보통 거리의 악사가 있기 마련인데 이 광장 곳곳엔 행위 예술가, 말하자면 사진을 매개로 돈을 요구하는 몇몇 커다란 인형들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광장과 펜더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좋아하더라.
광장 한 쪽에 있는 천문시계가 종이 칠 시간이 됐는지 사람들이 시계탑앞에 빽빽히 모여있다. 시계는 시곈데 읽을 수 없다. 몇 시인지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시계다. 어떤 대단한 시계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을까, 카메라를 치켜든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정각을 기다린다.
4시 정각. 댕댕거리는 종소리가 울리며 뻐꾸긴지 뭔지 인형들이 몇 바퀴 돈다. 그게 끝이다. 사람들의 허탈한 웃음 소리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허망하다 못해 황당했다. 황망함을 달래려 하멜 시장(Havel’s Market)으로 향했다.
옛날엔 이런 시장 참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어선지 별로 재미 없더라. 걸으며 노점상을 한 번 쭉 둘러보는 것으로 시장 관람도 끝. 오늘의 공식적인 투어 일정은 끝났다.
숙소로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물도 넉넉하게 사고 맥주도 종류별로 샀다. 솔이가 하루종일 고대하던 굴뚝빵도 사먹었다. 낮부터 굴뚝빵 사준다고 해놓고 너무 늦게 사줘서 미안. 솔이 에미는 왜 밥먹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사주냐고 궁시렁댔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면 애초에 사준다고 말을하지 말았어야 했다. 약속했으면 그냥 지키는거다. 아이스크림과 생크림을 가득 올린 굴뚝빵을 손에 든 이 순간이 솔이에겐 오늘 중 최고의 순간인거다.
저녁을 먹고 모두 모여 맥주 품평회를 열었다. 세가지 맥주를 마시며 각자 평가하기. 나는 그저 다 쓴 맥주 맛이었는데, 이제 술 맛을 알게된 겨울이는 이게 어떻게 똑같을 수 있냐며, 뭐는 부드럽고, 뭐는 끝맛이 어떻고 마치 맥주 전문가처럼 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이 중에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지만 맥주를 많이 마신다고 맛을 아는 것은 아니다. 술이란 자고로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 먹고 기분 좋게 취하면 된다. 하하!
쏘세지를 볶아 안주 삼아 기분 좋게 마시고, 소화도 시킬겸 혼자 밖으로 나왔다. 올드타운 스퀘어의 야경이 궁금하기도 했다. 광장을 한 바퀴 돌고 강가로 나가 빛나는 프라하 성을 눈에 담았다. 어제는 별로였던 체코가 오늘은 맘에 쏙드네. 훗. 여행에선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다.
TLTR
- Day12 2019년 1월 12일 하루종일 걸어서 프라하 투어. 오전에 카를교(Charles Bridge)와 프라하 성,(Prague Castle) 성 비투스 성당(St. Vitus Cathedral), 오후엔 올드타운 스퀘어(Old Town Square), 천문 시계(Astronomical Clock), 하멜 시장(Havel’s Market) (사진)
- 지출
물 22.00 Kč
빌라 (저녁 거리) 416.00 Kč
빌라 맥주 68.00 Kč
테스코 (군것질) 100.00 Kč
굴뚝빵 300.00 Kč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