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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섯의 여행 #13 프라하 휴식
13 J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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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니 날이 어제보다 쾌청하길래 혼자 조용히 아침 산책에 나섰다. 평화로운 프라하의 일요일 아침. 카를교를 건너 강가를 걷고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아침 산책은 언제나 옳다.

평화로웠던 아침 산책
평화로웠던 아침 산책

상쾌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 샐러드를 썰고, 빵을 굽고, 계란을 삶고, 양파와 쏘세지를 구웠다. 금방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환상의 브랙파스트.

싸움

아침을 먹고 내일 항공 이동을 위한 ‘점검 및 정리’를 하던 중, 냉장고를 열어보니 남은 음식이 뒹굴고 있었다. 모두 버리고 가야 할 것들이었다. 그렇게 먹을 만큼만 사라고 했구만!

남은 음식을 문제 삼자, 두 주부들이 들고일어났다. 얘기 좀 해보자고 테이블에 모여 앉았지만 각자 자기 얘기만 하고 서로 비난만 하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막둥이가 울면서 테이블을 떠났고 대화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중단됐다. 그러자고 시작한 게 아닌데 대화는 결국 싸움으로 끝났다.

서로에게 상처만 준 채 끝나버린 대화에 마음이 불편했다. 단순히 남은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함께하는 여행, 불편한게 있으면 그때그때 얘기하고 풀면 되는데 그걸 못했다. 불편해도 참고, 말하지 않는 것이 배려라 여겨왔기에, 모르는 사이에 불만들이 쌓였고 쌓인 것은 은연중에 말로 행동으로 드러났다. 결국 터진거다.

지난 밤에 사건이 있었다. 서울에서 알고 온 라이언 수화물 정책과 지금의 정책이 달라졌다. 비행기 티켓을 사고 나서 수화물 정책이 바뀐 거다. 결국 짐을 줄여 왔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빼도 박도 못하게 추가 요금을 물게 됐다. 황당했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충분히 회의했고 다 같이 내린 결정에 따라 짐을 꾸려왔다. 이제 와서 누구 한 명의 실수라고 할 수도 없고, 누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라이언에어를 비난했으면 비난했지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추가 요금을 내고 수화물을 사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했던 말들이 두 자매에겐 비난으로 들렸나 보다. 아니 내가 비난하는 말을 했나 보다. 어떤 일에 대한 내 감정을 드러내면 그 일에 연관된 사람은 그렇게 들을 수 있다. 자매들은 내가 자기들을 비난한다며 나를 비난했다. 두 자매가 한 편이고 나는 그들의 적이었다. 속상했고 억울했다.

나는 인간의 모든 갈등은 대화로 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물론 기술이 서툴러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다음부터 같이 여행 다니지 말자라는 결론이 아니라, 같이 여행을 잘하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런 결론이 슬프고 답답했다.

5자매가 모두 나가고 나는 숙소에 혼자 남았다. 투어는 어제 다 했고 프라하에서 더 보고 싶은 것은 없었다. 앞으로의 여행이 어때야 할지를 생각해봤다. 신경을 끄라니 신경을 꺼야 하고, 대화하기보단 그저 신경을 거스르지 말아야 했다.

밖에 나가서 좀 걷다가 맥주를 사서 돌아왔다. 술은 낮술이다. 숙소에서 혼자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잘한 게 없었다. 대화를 하자며 내 얘기만 했다. 돌아보면 지난 2주 간 무기력하고 귀찮고 피곤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내내 까탈스러웠고 불만이 많았다. 아침 산책 같은 걸로는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맥주를 열심히 마셨댄 걸지도.

저녁 외식

하루 종일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은 좀 나아졌다. 내가 잠시 나간 사이 관광을 나갔던 5자매가 들어왔다. 슬픈 건 슬픈 거고 밥은 먹어야 한다. 저녁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내내 집에서 먹기도 했고, 기분도 전환할 겸 근사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구글맵에서 찾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지하로 내려가니 우리뿐이다. 잘 생기고 단정한 웨이터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배불리 먹고 와인을 한 잔 마시니 구겨졌던 기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펴졌다.

만족스러웠던 저녁 식사
만족스러웠던 저녁 식사

알딸딸한 기분 좋은 상태로 프라하의 마지막 밤을 즐긴다. 골목을 쏘다니며 사탕가게에서 사탕도 사 먹고, 뜨거운 와인도 한 잔 마셨다. 강의 야경이 노랗게 빛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밤거리. 굴뚝빵을 또 사 먹고 마지막으로 카를교도 다시 한번 건넜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올드타운 스퀘어도 다시 갔다. 밤이 깊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바르셀로나로 간다. 모두 짐 정리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 나는 먼저 잠이 들었다.

어쨋든 여행은 여행대로 흘러가겠지. 서로에게 상처줬던 말들을 해명하거나 사과하지 못한 채, 마음을 닫고 거리를 둔 채.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럽 여행 참 잘 갔다 왔다고, 좋은 추억이었다고 하겠지. 그렇게 가족이란 이름으로 묻어버리면 그 상처는 어떻게 될까.

TLTR

  • Day12 2019년 1월 13일 며칠전부터 까끌까끌 하더니 결국 사단이 났다. 테이블에 모였지만 대화는 실패, 하루종일 각자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만나서 만찬 후 프라하 밤거리 쏘다녔다 (사진)
  • 지출
    맥주 34.00 Kč
    핫 와인 40.00 Kč
    초콜릿 104.00 Kč
    저녁식사 (이탈리안 레스토랑) 1,767.00 Kč
    굴뚝빵 280.00 Kč
    생강쿠키 15.00 Kč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