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여여여의 1장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서방님들과 함께 하는 대가족 여행이 시작된다. 7시에 일어나 키친에 앉아 있는데 언니가 마그넷을 산다고 나갔다. 밥을 해놓고 나도 얼른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프라하는 예쁜 도시였지만 내 마음은 예쁘지 못했다. 아름다운 프라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네.
숙소 주변으로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10시에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챙겨 먼저 나왔다. 키를 반납하러 사무실에 갔더니 집을 체크해야 한다며 20분을 기다리란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기다리라니 짜증이 났다. 리셉션의 여직원에게 숙소 프로세스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을 하니 귀찮다는 듯 눈도 마주지지 않고 기계처럼 대답했다. 프라하에선 아무도 행복하게 일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제밤 레스토랑의 웨이터만 빼고.
자매들과 광장 근처에 있는 메트로 역에서 만나 공항으로 이동. 표를 끊는데 동전이 없어서 또 짜증이 났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쉽게 난다. 마음이 문제다. 여행하기 적당한 시기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1120쯤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14시40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공항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며 수퍼마켓도 구경하고 서브웨이에서 점심도 때웠다.
그러고보니 예솔이는 핸드폰도 없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칭얼댄 적이 없다. 어른들과 똑같이 걷고, 아니 보폭이 적으니 훨씬 더 걸어야 하니 힘들고 피곤할텐데 잘먹고 잘논다. 늘 뭔가 즐겁고 재밌다. 좋아하는 언니들과 무조건 예뻐해주는 이모들에게 24시간 둘러싸여 있으니 좋긴 하겠지. 이 모든 일정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수화물 문제로 라이언 에어에게 단단히 유감이 생겼다. 앞으로 라이언에어를 5번이나 타야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난 지피지기를 위해 게이트 앞에서 승무원들의 태도와 업무 절차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딩 시간이 다가오면 푯말 두개가 게이트 앞에 선다. 하나는 Priority, 하나는 Others. 보딩이 시작되면 Priority줄에 선 사람들이 먼저 탑승한다. 다 들어가고 나면 Others가 입장. 중간에 늦게 온 Priority 승객이 있으면, 마치 비지니스 클래스 승객처럼 우선적으로 들여보내준다. 빨리 타는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먼저 탄다고 먼저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시내버스 같은 좁은 의자에 앉아 기다려야 하니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Priority줄을 유심히 관찰했다. 마침 캐리어를 든 두 명의 남자 승객이 줄을 잘 못 섰는지 옆으로 밀려 났다. 승무원이 캐리어 사이즈를 재라고 시키고 뭐라고 설명하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망설이는듯 하더니 안좋은 표정으로 지갑을 꺼내어 카드를 내밀었고 직원은 캐리어에 노란색 태그를 붙여줬다. 예상컨데 Non Priority인데 캐리어를 들고 Priority 줄에 선 것 같았다. 귀신같이 잡아내는 걸 보니 보딩패스에 바코드를 찍으면 좌석정보가 나오나보다.
Non Priority 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캐리어가 없이 작은 배낭 또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간혹가다 캐리어를 든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 문제 없이 통과하기도 했다. 궁금했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Priority 티켓을 샀지만 일행 때문에 Non Priority 줄에 선게 아닐까 라고 추측.
스페인 바르셀로나
예정보다 10분 늦게 문을 닫고 1450에 출발하여 1705 해가 뉘엿거릴 무렵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Areobus 를 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오자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가 달랐다. 기온도 따뜻하고 날씨도 쾌적했다. 겨울에서 가을로 넘어온 기분. 한 번 와봐선지,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한국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동하는 사이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숙소 앞에서 직원을 만나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어마무시하게 넓었다. 방이 6개. 침대가 12개. 화장실이 3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30미터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솔이는 이미 집안을 뛰어다니느라 신났다.
곧 형부가 왔다. 근데 빈손으로 왔다. 오전에 도착해서 체크인이 되지 않았고, 주변을 서성이다 어딘가에 짐을 맡겨두고 돌아다니가 와보니 문을 닫았더랜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도 훔쳐 가는 스페인에서, 숙소도 아닌 옆 건물에 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손짓 발짓을 동원해 짐을 맡기려면 사람이 얼마나 순수해야 할까? 한국처럼 남의 물건에 손 안대는 도시는 지구상에 없다는 걸 모르는 상태라면, 인간에 대한 의심이나 짐에 대한 걱정보다는 말 안통하는 도시에서 뭔가를 해냈다는 감격에 뿌듯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형부는 아줌마 인상이 좋았다며 내일 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우면 좋으련만.
저녁을 먹으러 다같이 나갔다가 찍어둔 레스토랑에 사람이 많아서 포기. 아, 대가족은 외식을 하기도 힘들구나.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장을 대충 봐서 숙소로 왔다. 나는 형부 캐리어의 행방을 찾아 옆 건물 대문 앞을 서성였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형부는 제부를 마중 나가고, 나머지는 저녁 준비. 금새 근사한 만찬이 차려졌다. 서방들이 오니 절로 힘이 나는지 8명이 먹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식사를 언니랑 막둥이 둘이서 준비했다. 주부의 힘이란. 마침 제부도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일정 브리핑 후 방 뽑기. 앞으로 방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하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딸기, 솔이 (제부), 막둥이, 나, 언니, 형부 순으로 방을 골랐다. 3인 가족 오가족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가장 큰 방 2개를 차지했고, 1인 가족인 나는 더블 침대가 하나 놓인 아늑한 방을 골랐다. 4인가족인 송가족은 남은 방 3개로 뿔뿔히 흩어졌다. 송자매는 사이좋게 더블 룸, 형부와 언니는 각자 독방을 쓰기로 했다.
집이 정말 커도 너무너무 컸다. 복도를 따라 방이 늘어서 있는게 집이 아닌 무슨 기숙사 같은 느낌. 자기 방 문을 찾다가 자꾸 남의 방문을 열어대서 방 문 손잡이에 각자 영역 표시를 했다. 집이 큰 것 까진 좋았는데 결정적으로 방에서 와이파이가 안잡혔다.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맥주 한 병과 와인 두 어 잔을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
TLTR
- Day12 2019년 1월 14일 1부 마무리, 2부 시작. 바르셀로나로 이동 (사진)
- 지출
공항가는 버스 32 5인 160.00 Kč
언니 마그넷 99.00 Kč 공항 서브웨이 276.00 Kč 공항 군것질 69.00 Kč 공항 커피 26.00 Kč 프라하-바르셀로나 항공권 라이언에어 6인 $224.63
라이언에어 짐추가 €45.00
바르셀로나 공항 버스 (10.2 6) €61.20
공항 물 €1.60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물 €0.49
저녁거리 수퍼마켓 €39.21
바르셀로나3박 (아고다) $689.45
바르셀로나 시티 택스 (2.4863) €44.64
Topic: europe-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