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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듯 가볍게 (김도인, 2016)
26 Ju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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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숨쉬듯 가볍게 (상처를 이해하고 자기를 끌어안게 하는 심리여행)
  • 저자 : 김도인
  • 출판사 : 웨일북
  • 날짜 : 25/06/2019

수년간 책을 그렇게 읽어댔지만, 요즘처럼 읽은 책을 다시 읽은 적도 없는 것 같다. 이번 달 들어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것만 세 번째.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것은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은 2018년 초 호주에 한 달 살기를 갔을 때 가지고 가서 아껴 읽었던 책이다. (올 때 최지영에게 기증) 이 책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단연코 데비네 뒷마당.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햇볕을 쬐는 게 매일매일의 큰 낙이었다. 해를 등지고 앉으면 햇빛을 온몸으로 받은 책장이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끼고 책을 읽어야 했다. 뒷마당에 앉아 부스스한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다시 떠올려도 좋은 기억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기록을 찾아보니 책 얘기는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책’이라는 알 수 없는 소감 한 줄뿐. 나머진 그 아침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서만 잔뜩 써놨더라. 그 순간의 냄새와 촉감과 소리는 생생한데 그게 너무 좋아서였는지, 정작 책에 대한 느낌은 오간데 없이 묻혀버렸다. 어쨌든 이 책은 나에게 읽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또 한 권의 책이었다.

다시 읽기

책은 크게 마음, 몸, 깨달음,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 장에서는 ‘예스 프로젝트’와 ‘인사이드 무비’라는 개념을 들어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설명하고, <몸> 장에서는 감각을 깨우고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마지막 장에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깨달음>에 대해 얘기한다.

책은 얇고 제목처럼 가벼웠다. 전체적으로 해요체를 써서 술술 잘 읽혔지만, 뭐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가 어려웠다. 각 챕터는 쉽게 읽혔지만 뭔가 딱 맞아떨어지는 구성이 아니라고 느꼈는지 하나의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서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책의 거의 마지막에서 <행복한 삶을 위한 두 가지 자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외적 자원과 내적 자원. 외적 자립은 경제적 자립, 내적 자립은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힘으로 다시 표현된다. 읽은 게 정리가 안돼 버벅거렸지만, 쓰다 보니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내적 자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책은 실연의 고통을 안고 있는 시우라는 가상의 인물을 세워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우가 지금 괴로운 것은 단지 실연을 해서가 아니라 과거에 엄마에게 버림받은 경험에서 온 부정적 감정과 생각들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대부분의 심리서에서 그렇게 말한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어린 시절의 상처에 기인한다고. 다들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 싶기도 하지만 뭔가 석연찮긴 하다. 정체성, 세계관, 인생관에서 오는 고통이 결국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라니. 차라리 타고난 기질이라고 하면 속이나 편할 것을. 이런 주장은 부모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어쨌든 원인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결 아니겠는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있다. 오래된 고통과 상처는 지우는 게 아니라 이해할 때 사라지는 것이며, 감정이 그 고통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에, 감정을 이해하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한다. 다행이구만.

마음을 위한 두 가지 솔루션. 예스 프로젝트 & 인사이드 무비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상에서만 산다. 정체성, 세계관, 인생관도 우리가 경험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경험에서 온 부정적인 감각, 생각, 감정의 합은 새로운 경험에도 자동적으로 반복되고, 이러한 ‘고통 유발 패턴’은 정체성, 세계관, 인생관과 뒤범벅되어 켜켜이 쌓이고 한 인간에게 고통의 역사를 남긴다.

이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삶의 변수를 받아들이면서, 감정과 생각 또한 변할 수 없는 절대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예스 프로젝트’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거부와 회피라는 반복적인 패턴에 변화를 주란 얘기다. 감정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게 아니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과 나를 동일시할 때, 그것이 영원하다고 믿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감정과 생각은 늘 변한다는 것을 경험하면 comfort zone이 넓어지고 삶의 근력이 생긴다.

또 다른 방법은 고통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이름하여 ‘인사이드 무비’. 과거에 상처가 되었던 그 일을 다시 경험하고 새로운 관찰자 시점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 경험을 받아들여 고통의 덩어리를 해체하고, 그 구성 요소들을 바꾸는 작업이란다. 이렇게 하면 과거에 수용하지 못했던 감정과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해소되고 고통도 사라진다고 하는데. 흠.. 당장 고통스러운 것도 힘든데 어린 시절의 기억, 그것도 감정을 반복해서 겪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다. 뭘 하려고 해도 일단 기억력이 좋아야겠구만. 인생에 딱히 고통이랄 게 없어 다행이다 싶다가, 문득 고통은 기억을 너무 잘해서 그런 거 아닐까, 차라리 기억력이 안 좋아 다행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났다. 풉.

경험해보니,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을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일단 그걸 알아야 하고, 그 방법을 알아야 하고, 또 자꾸 연습해야 한다.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도를 닦는 마음으로 수행해야 간신히 가능한 일이다.

책은 상처를 이해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고통이 없는 삶이 행복한 삶은 아닐 테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다. 행복을 위한 마음의 숲을 가꿔야 한다. 지금은 더운 여름일 수도 추운 겨울일 수도 있다. 계절에 맞는 나무를 골라 한 그루 한 그루 심다 보면 언젠간 내 마음의 숲도 푸르러지겠지. 나무를 심자. 마음의 숲을 가꾸자. 푸르게 푸르게. (조만간 꼭 <주역> 나무를 심어야겠다.)

더 생각해 볼 것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이해’가 아닐까 싶다. 읽을 땐 몰랐는데 필사를 하다 보니 이해란 단어가 정말 많이 나왔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처를 이해하고, 문제를 이해하고, 기질을 이해하고,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근데 정작 이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명쾌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이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숙제로 남겨둔다.


Tags: 철학, 마음,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