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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트위터 (정유민, 2018)
14 Ju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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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아무튼 트위터 (그 애매한 마음들이 남겨놓는 넉넉한 거리가 좋아서)
  • 저자 : 정유민
  • 출판사 : 코난북스
  • 날짜 : 13/06/2019

<아무튼> 시리즈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알게 됐는데, 참으로 생뚱맞고 황당한 제목들이 많다. 그중 가장 먼저 내 손에 들어온 ‘아무튼 트위터’.

트위터라면 10년 전쯤엔 가장 핫했던 SNS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도 2009년쯤 계정을 하나 만들었지만,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아무 말 대잔치가 의미 없다고 느껴져 결국 계정을 삭제했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트위터. 요즘도 누가 트위터를 쓰나 했더니 쓰는 사람이 있었구만. 게다가 트위터 예찬으로 책까지 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2015년에 SNS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미 정리한 적이 있고, 이후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수년 전 만들어 둔 트위터에 들어가 보니, 한글인데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정신이 없었다. (몇 년 사이에 내가 할머니가 다 되었구나) 나는 단 3명을 팔로우 했을 뿐인데 그들의 취향은 어찌도 그리 비슷한지, 고양이나 개 사진은 정말 짜증 날 정도로 많았고, 모두 페미니스트들이었으며, 여성 혐오에 대한 혐오 글도 제법 올라왔다. 이걸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 혐오에 대한 비난은 또 다른 혐오 아닌가? 정치인을 비난하는 욕을 한 줄 쓰면 뭐가 달라지나? 페미니즘 기사를 RT 하고 퍼다나르면 뿌듯한가? 타임라인엔 쉴 새 없이 이슈, 논쟁, 비난, 가십, 광고, 의미 없는 말들이 넘쳐났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보여주니 문제다. 투머치다. 나는 그것들이 여전히 공해로 느껴지니, 저자처럼 트위터에 빠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누군가는 나의 아무 말 트윗을 보고도 어느 순간 조용히 ‘마음’ 을 누르겠지. 공감한다는 의미일까. 좋다는 의미일까, 바보같은 말이라서 표시를 해둔 것일까, 저장하고 싶다는 의미일까.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애매한 마음들이 남겨놓는 넉넉한 거리가 좋아서 도망쳐 온 곳이니까.

저자는 그 애매한 마음들이 남겨놓는 넉넉한 거리가 좋다지만, 나는 그런 애매함이 싫다. SNS는 펜듈럼의 구렁텅이고 나는 거기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더 많을 게 틀림없다. 그리하여 나는 SNS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 유형이라는 결론. 땅땅.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다. 도망가자!


  • 소통하고 싶지만 소통하고 싶지 않은 마음. 혼잣말이지만 혼잣말은 아니면서 혼잣말인 말. 무언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만 그 말에 꼭 반응을 기다리지는 않는 상태. 그런 나의 애매한 상태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그걸 기대하기에 가족 단톡방은 너무 오랜 관계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 어딘가의 혼자인 누군가와 혼자인 내가 느슨하게 닿아 있는 심정적인 관계.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관계’를 상상하고 신뢰하며 즐거워하는 건 섬뜩한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다들 그걸 알면서도 크리스피함은 애써 넣어두고 즐거워하는 것에 집중하며 슬기로운 트위터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 누군가는 나의 아무 말 트윗을 보고도 어느 순간 조용히 ‘마음’ 을 누르겠지. 공감한다는 의미일까. 좋다는 의미일까, 바보같은 말이라서 표시를 해둔 것일까, 저장하고 싶다는 의미일까.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애매한 마음들이 남겨놓는 넉넉한 거리가 좋아서 도망쳐 온 곳이니까.
  • 내게 고향의 인연은 유아세례 같은 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천주교 신자인 부모님에 의해 천주교 신자가 돼버린 것처럼, 우연히 짝꿍이 된 옆자리 친구와 단짝 친구가 되고, 같은 성당에 다니다 보니 같은 무리가 되는 인연들. 자아가 커질수록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의문이 커졌따. 같은 시절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을 지내왔기에 나눌 수 있는 우정이나 사랑이 무의미하진 않았다. 누구라도 유년의 시간이란 그런 선택할 수 없는 요소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니까. 어차피 태어나는 것부터가 내 선택은 아니지 않은가.
  • 아주 오랫동안 나는 여성으로서 내가 느낀 감정들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여성학 특강을 들으면서 나는 비로소 언어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받는 사람이 기쁘지 않다면 그걸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잠시나마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긴 하지만 그 잠깐 눈요기를 하려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 나는 꽃 선물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비싸고 금방 시들어 죽으니까. (공감)
  • 너의 전략과 나의 마음이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만나 사는 게 조금 즐거워졌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Tags: 문학,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