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 저자 : 전지현
- 출판사 : 팩토리나인
- 날짜 : 3/06/2019
오늘은 조금 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다. 시간 서가를 스캔하다가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정신과. 가벼운 주제는 아니지만 일단 책이 얇다. 나한텐 책이 얇으면 가벼운 거다.
책은 역시 가벼웠다. 한 여성이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그 이후에 여러 의사들을 만나면서 겪은 일들을 썼다. 우울증에 관한 책이라기보단, 평범한 누군가가 쓴 의사 탐방 기록에 가깝다. 우울증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에 좋은 의사를 만나 우울증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스토리도 아니다. 기승전결 없이 편하게 쓴 일기에 가깝다. 물론 그 얼기설기한 이야기들 사이에 쓰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쏘아붙이기만 하는 무서운 첫 번째 의사, 상담하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이 불편했던 두 번째 의사, 함께 고민하고 단순한 위로가 아닌 용기와 의지를 북돋아주었던 세 번째 의사. 저자는 이 세 번째 의사를 최적의 의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버렸지만. 그 뒤의 의사들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저자는 먹는 것과 자는 것도 힘들 만큼 쇠약하여 내 몸뚱이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도, 정상적인 엄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저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내가 무척 놀란 대목이 있었으니, 저자는 두 아이를 둔 엄마다. 남편도 있다. 근데 병원에 갔다 와서야 남편한테 자기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스스로 병원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을 정도면 그간 많은 증상이 있었을 테고 많이 힘들었을텐데, 그걸 남편과 나누지 않았고 병원에 갔다 와서 통보라니. 혼자 앓다 병원에 갔다 와서 ‘나 암이래’ 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뭐 그런 걸 시시콜콜 얘기하느냔다. 우리 그런 사이 아니란다. 헐. 그럼 부부 사이에 그런 걸 얘기 안 하고 무슨 얘길 하지? 국제 경제나 세계 평화를 얘기하나?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부부가 이럴 수 있지? 저자가 가족 안에서 또는 남편과 정서적으로 채워지고,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우울증이 생겼을까? 8년 동안 7명의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각성제 항도파민제 항우울제 수면제를 매일같이 챙겨 먹으면서 다른 노력은 해봤을까? 그동안 남편은 뭘 했을까? 별의별 질문이 다 올라왔지만, 책에 쓰여있지 않은 얘기는 추측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난 결혼한 여자에게 생기는 우울증의 책임은 반 정도는 남편에게 있다고 본다. 돌봐야 할 것을 돌보지 못하고, 주어야 할 사랑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병이다. 그게 남편 쪽이든 아내 쪽이든 책임은 반반이다.
우울증 하면 우리 엄마가 떠오른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건지, 정확히 어떤 증상이고 어떤 상태였는지 모르지만 엄마 스스로 우울증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엄마는 술을 좋아했었는데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울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엄마 입에선 우울증이란 말이 나왔다. 엄마가 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친구들이랑 다투기도 한 것 같았고, 아빠 때문에 속상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삶이 무거웠거나 외로웠을 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 난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아니 술을 기분 좋게 마실 일이지, 왜 술만 마시면 우울증이란 말을 들먹이는지, 왜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진단 내리고 그러면서 또 아무것도 하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울하면 기분전환을 하던가, 정말 병이라고 느껴지면 병원에 가던가 할 일이지.
우울증이라는 것은 병이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다. 생각을 조금만 고쳐먹으면 되는데 왜 저렇게 스스로 땅을 파고 있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난 그때 다 큰 딸이었지만 엄마의 얘기를 들어줄 수 없었다. 돌아보면 엄마와 나는 마음을 털어놓는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뭐 난 엄마의 남편이 아니었으니까. (라며 발을 빼보지만, 좋은 딸도 아니었다.)
저자가 스스로 우울감을 감지하고 전문가를 찾아간 것은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느끼지 못한 채 세상을 탓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면서도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 책만으로는 우울증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다. 생리적 물리적 결함인지, 호르몬 때문에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그런 호르몬이 나오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 시작은 우울감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감정, 즉 마음의 병이라는 것은 안다. 마음이 아프다 못해 곪아 터져 제 역할을 못할 때 생기는 병. 암이나 외상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여러 가지 증상들이 일상생활이 영향을 주니’병’으로 취급되는 특별한 병. 우울증의 진짜 원인은 마음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겠지.
여러 가지 약으로 감각을 둔하게 해서 증상을 없앨 순 있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는다. 마음의 병은 약으로 치료될 수 없다. 마음은 내꺼다. 다른 누군가가 열어서 치료해 줄 수 없다.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삶의 무게를 덜어 줄 사람,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람, 나를 사랑에 푹 담가줄 사람이 옆에 있으면 더 좋겠지.
발가락 하나 잃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은 모른다. 나만 알지. 다시 생겨나는 일은 없을 거다. ‘발가락은 열 개’라는 기준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는 약간 불편하고 숨기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이는 거다. 남아 있는 발가락 아홉 개를 잘 보살피면서.
겪어보지 않은 나는 단순히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우울증을 다시 자라지 않을 발가락 하나가 없어진 것에 비유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완치가 되지 않는 불치의 병이라면. 난 지금도 우울증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치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다. 남의 병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은 또다시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여기서 줄인다.
Tags: 문학,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