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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신예희, 2018)
7 Ju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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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 저자 : 신예희
  • 출판사 : 21세기북스
  • 날짜 : 6/06/2019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내 꿈이 반농반X인 줄 알았다. 직장인이 아니면 농부라니. 도 아니면 모냐. 뭘 모르면 그렇게 된다. 나는 직장인이라는 노예 생활이 싫었던 건데 하마터면 시골 내려가서 농사지을 뻔했다. 농부는 더 바쁘다. 힘들기까지 하다. 얼마 전 여행에서 만난 귀농하신 여성분이 그랬다. 농부는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며, 그만하고 싶을 때 관둘 수 있다는 거 빼고는 자식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내가 원하는 건 자연을 벗 삼는 여유로운 삶이지 시골 농부의 삶이 아니다. 시골 생활이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삶이지만, 그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불편함 들을 감내할 자신은 없다. 출퇴근이라는 비를 피하려다 농사라는 태풍 속으로 들어갈 뻔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여자가 결혼을 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다행히 난 직장인도 농부도 아닌 ‘백수’라는 안전지대를 찾아냈다. 필요할 땐 적당히 경제활동도 해야 하니, 정확히 말하면 반백수의 삶이다. 점잖은 말로는 프리랜서의 삶이라고 하겠다. 평상시엔 백수로 지내다, 일을 할 때나, 있어 보여야 할 때는 프리랜서란 단어를 쓴다.

<지속가능한 반 백수 생활을 위하여>.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큭. 어머 나 같은 사람 또 있네. 형광 연두 책등에 형광 핑크 궁서체 제목. 참으로 백수적이고 도발적인 디자인이다. 이런 건 읽어야 해. 머리말도 읽지 않고 그냥 빌려왔다.

치열한 백수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는 내 또래의 싱글 여성. 백수는 이 나이에 꾸는 가장 이상적인 꿈이라 할 수 있겠다. 암만. 제목엔 반백수라고 표현했지만 저자는 전문 프리랜서다. 책의 앞부분에선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다음엔 싱글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단 백수는 기본적으로 싱글을 깔고 간다. 결혼을 하는 순간 백수의 꿈은 고이고이 접어야 한다. 살림만 하는 가정주부라도 이미 백수가 아니며, 한 집안의 가장이 백수 예찬을 하는 일은 대한민국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싱글일 때 가능한 것이 백수다. 그러고 보면 나는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잘 가고 있다. 하하.

책은 좀 웃긴다. 말장난같이 툭툭 던지는 생뚱맞은 존댓말. ‘이런저런 것이다.’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이죠.’ 하는 식이다. 처음엔 교정이 안된 건 줄 알았다. 문장이 이렇게 통일성이 없어서야 싶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지고 나니, 마치 저자가 글을 쓰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보며 하는 말 같았다. 괄호 안에 들어가 있는 추임새들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더했다. 매우 솔직하고, 그러기에 재밌다. 문장은 가볍지만 글의 내용은 깊고, 실없어 보이면서도 단단한 신념이 느껴졌다. 백수의 효용을 말하며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점잖을 떠는 건 아무래도 호소력이 떨어진다. 훌륭하다. 가진 자만이 떨 수 있는 품위다.

저자는 놀고 놀고 또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작 본인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은 하지 말자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해결하고, 나한테 최고로 잘해주며, 돈으로 체력을 비축해 두자고 한다고 주장한다. 인풋이 넉넉해야 아웃풋이 넉넉하다며, 눈으로 코로 귀로 입으로 온몸 구석구석으로, 온갖 좋은 것을 만나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안에서 더 좋은 것이 튀어나온다고 말한다. 옳소다.

모든 취미엔 기본적으로 돈이 든다. 이럴 때 쓰자고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거다. 죽자고 아껴봤자 나 아닌 누군가가가 다 갖다 쓴다. 그러니 있는 돈 잘 쓰는 것도 능력이다. 돈은 버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주인이다.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제스쳐, 우아한 인내심은 모두 체력에서 나온다. 좋은 일에 크게 웃기 위해, 열 받는 일에 크게 쌍욕을 하기 위해 우리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

길게 가기 위해선 탄력과 복원력이 필요하다. 손으로 꾸욱 누른 자국이 다시 쑤욱 솟아올라야 한다. 푹 자고 일어나, 어제의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날을 시작해야 한다.

뻔뻔한 백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포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저자는 애인이 있지만 비혼을 주장하며, 쓸데 없는 ‘돈지랄’을 즐김과 동시에 10원 단위까지 가계부를 쓴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꿈꾸기에, 나의 내면은 견고한지 꽉 막힌 것은 아닌지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를 자주 점검한다. 돈을 예찬하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것에 과감히 투자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엔 균형을 말한다. 나만의 균형을 찾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삶, 지속가능한 백수가 되기 위해서다. 이쯤이면 태도와 능력을 겸비한 프로 반백수 되시겠다. 아 이 분 나의 백수 연대로 초대하고 싶다.


  • 돈이 썩어나고 시간이 흘러넘쳐서가 아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뒤로할 것은 뒤로하고 떠났다. 나만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그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
  • 놀고 놀고 더 놀아도 된다. (…) 그렇게 머리와 마음을 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때가 온다. (…)아직 일어나고 싶지 않다면,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니 다시 편히 누워도 된다.
  • 모든 취미엔 기본적으로 돈이 든다. 이럴 때 쓰자고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거다. 죽자고 아껴봤자 나 아닌 누군가가가 다 갖다 쓴다. 그러니 있는 돈 잘 쓰는 것도 능력이다. 돈은 버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주인이다.
  •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제스쳐, 우아한 인내심은 모두 체력에서 나온다. 좋은 일에 크게 웃기 위해, 열 받는 일에 크게 쌍욕을 하기 위해 우리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
  • 남들 다 시집장가 가서 애 낳고 잘사는데 넌 왜 안하니. 아, 그야 나랑 안맞으니까 안 하는 거죠.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요.
  • 꾸준한 업데이트는 무척 중요하다. 마음이 젊다는 것은 업데이트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인풋이 넉넉해야 아웃풋도 풍성해진다. 우리는 눈으로 코로 귀로 입으로 온몸 구석구석으로, 온갖 좋은 것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게 왜 그렇게 좋은지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안에서 더 좋은 것이 튀어나온다.
  • 하던 걸 그만두는 게 곧 패배와 실패를 뜻하진 않는다 그동안 쏟아부은 열정, 노력, 시간, 돈이 아깝고 억울해 ‘억지로 계속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다. 내가 내 발목을 잡는 셈이다. 고냐 스톱이냐,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내가 나와 합의를 봐야한다. 그동안 할 만큼 했고, 이제는 됐어, 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끝낸다. 끝을 내야 그다음을 시작할 수 있다.
  • 20대 30대에 거친 파도를 짜릿하게 타고 달렸다면 이젠 잔잔함을 즐길 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잔잔하게 꾸준히 내 페이스로 가겠다는 것.
  • 영감은 오고 간다. 슬럼프도 오고 간다. 온갖 칭찬 가득한 댓글도 오고 간다. 어서들 오시고, 안녕히들 가시라며 잘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다음을 상상하고 기다리기가 어려워진다.
  • 고생한 사람을 추켜세우며 칭찬하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고생, 그거 감투 아니에요. 안 하는 게 최고랍니다.
  • 길게 가기 위해선 탄력과 복원력이 필요하다. 손으로 꾸욱 누른 자국이 다시 쑤욱 솟아올라야 한다. 푹 자고 일어나, 어제의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날을 시작해야 한다.
  • 뭐든 해야 한다. 사소해도 좋다. 망쳐도 좋다. 사소하다, 망쳤다는 것도 결국 두려움에 사로잡혀 섣불리 던지는 자평일 뿐이다.
  • 얼마간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엔 망설이지 말고 돈을 바르자. 자신에게 잘해주자. 돈으로는 안 되는 일, 그게 진짜 큰일이다. 그런 일은 언젠가 벌어지기 마련이니, 그떄를 위해 평소에 돈으로 체력을 비축해놓자.
  • 돈이 넉넉하다는 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 나는 최고가 되고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즐겁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게서 다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잘 풀리는 날이나 그렇지 않은 날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게.
  • 내 것을 가진다는 건 내 목소리를 또렷하게 낼 수 있다는 의미다.
  • 재능이라는 쑥스럽고도 뿌듯한 단어, 기부라는 따듯하고 아름다운 단어에 가려진게 무엇이지 파악해야한다.
  • 주위에서 툭 던지는 한마디는 종종 생각 이상으로 발목을 세게 잡아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뒷전이고, 주변 눈치부터 보게 된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탓이다. 내가 나를 잘 알게 되고 나에게 좋은 걸 해주기 시작하면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진다. 고마우면 고맙다 말하고, 아니다 싶으면 깔끔하게 거절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매일 노력하고, 꺠지고, 또 노력한다.
  • 내 취향에 확신이 생긴 만큼, 긴가민가하여 이것저것에 돈을 쓴늗 대신 딱 이거구나 싶은 것 하나에 과감히 투자한다.
  • 소비의 즐거움은, 없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 세상 쓰잘데기 없는 걸 살 때 폭팔한다.
  •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고 삶 전반을 돌보는 일은 창작자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피룡한 일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을 끝없이 유지보수해야 한다. 부디 가성비가 최고의 가치가 되지 않길 바란다.
  • 어라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새로운 선택의 여지가 생기는 순간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다양해질 겁니다.
  • 나의 내면은 견고한지, 그저 견고하기만 한지, 아니면 견고하면서도 유연한지 생각한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건 아닌지, 온통 담으로 둘러싸인 건 아닌지 생각한다.
  • 오래된 친구 관계는 어렵다. 너무 가까우면 때로 무례해진다. (…)오래된 관계와 오래되기만 한 관계의 차이를 안다.
  • 혼자일 떄 행복하고, 혼자일 떄 충만하다. (…) 어딘가에 기대지 않아도, 누군가를 붙잡지 않아도, 나는 내 두 발로 서야 한다. 그렇게 몸을 일으켜 거울앞에 서서 인생 혼자구나, 라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그 말이 그지없이 쓸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더 없이 홀가분하게 들리기도 한다. 혼자먹는 밥, 혼자 읽는 책, 혼자 보는 영화, 혼자 하는 여행.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과 많은 공을 들였다. 소중히 지키고 싶다.
  • 좋다. 나도 물어보자. 당신은 온전히 홀로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맞이한 경험이 있는가? 온전한 당신만의 공간을 꾸리고 지킨 경험이 있는가? 그 속에서 고독을 느끼고, 때론 그걸 즐기고, 떄론 그걸 떨쳐본 경험은? 그런걸 해보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당신 역시 진정한 어른은 아닌 것인가?
  • 기본적인 자기관리도 못하는 사람은 누구도 만나선 안 된다. 여성은 한 손에 빗자루를 다른 손에 행주를 쥐고 타어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여성이 자신과 주변을 깔끔하고 건강하게 관리한다면 그건 하나부터 열까지 후천적으로 습득한 능력이다.
  • 그래, 겁먹고 쫄아라.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주고 토닥여줄 필요가 없다. 우리의 넓고 따뜻한 가슴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 내가 원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다. 독립적인 사람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맺고, 발전시키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고싶다. 무슨 대단한 대접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좋은 점을 알고 존중해주는 사람. 그러려면 우선 나부터 괜찮은 사람, 혼자 힘으로 잘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와 함께 편안히 설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건강한 체질, 즐거움을 더해주는 명랑한 성격, 밖에서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간에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애정과 슬기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 원하는 게 확실한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고, 그걸 향해 걸어가는 사람은 더 드물다는 것.
  • 그래도 달라진 점이 있다.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보면 같이 가보자, 같이 해보자고 서로 옆구리를 찌르며 자극한다. 더 크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싶다.
  •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직 남아 있다는 건 내가 완전히 소진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 인간은 미지의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Tags: 백수,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