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저자 : 하완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 날짜 : 19/06/2019
작년부터 꽤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주제는 열심히 살지 않기. 음 이런 거 좋아. 세상 모두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할 때, ‘난 싫은데’ 할 수 있는 용기. 제목도 참 잘 지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제목이니 더 궁금하다. 작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책이 손에 들어왔다. 왠지 글은 고민 많은 누군가의 일기장을 가져다 붙여넣기 한 것 같아, 열심히 읽고 싶지 않아지기도 했다. 며칠에 걸쳐 띄엄띄엄 성의 없이 읽었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가 40대 여자 반백수가 쓴 책이라면 이 책은 40대의 남자 반백수가 쓴 에세이다. 저자는 프리랜서, 우리말로 하면 반백수다.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무려 4수씩이나 해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학원에서 알바를 하느라 학교는 뒷전, 졸업 후에는 투잡을 뛰며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날 결심한다. 열심히 살지 않기로.
물론 저자가 말하는 ‘열심히’라는 건, 시간을 저당잡힌 직장인의 삶을 말한다. 남들의 욕망을 쫓으며 살지 않겠다는 얘기지 내 삶을 내버려 두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회사는 그만뒀지만 저자는 열심히 산다. 그림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낼 정도면 열심히 사는 거지. 이 양반 가끔 팟캐스트에도 나온다. 이 정도면 열심히 사는 거다. ㅋ
읽다 보니 인생 참 성의 없게 산다 싶기도 하고, 허무주의와 득도의 경계선에서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저자는 실험 중이다.
자신의 치우침을 안다는 건 균형을 잡는 첫걸음이다. 이제껏 이를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그것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삶이었다. 그리고 이제 반대편으로 치우친, 노력하지 않는 삶을 시험하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 끝 양극단을 오가는 치우친 불균형의 삶이지만, 양쪽을 다 경험하고 나면 균형을 맞추게 되지 않을까? 흔들리던 오뚝이가 바로 서듯이.
그래 살아봐야 안다. 양쪽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무엇이 좋다 말할 수 없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라 마라 말할 수 없다. 풍요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풍요로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고, 가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가난한 삶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내가 경험해야 내 것이다. 해본 사람만이, 아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다. ‘휴, 하마터면 모르고 죽을 뻔했네.’
대부분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직장인의 삶을 내려놓지 못하지만, 요즘 이런 책이 간간히 보이는 걸 보면(백수의 눈에만 보이는 걸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삶도 괜찮다는 것, 좀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는 것, 삶을 사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책들이 많아지는 건 백수로써 기쁜 일이다.
필사
-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 조금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길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 현명한 포기는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체념이나 힘들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의지박약과는 다르다. 적절한 시기에 아직 더 가볼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어 그만두는 것이다. 왜? 그렇게하는 것이 이익이니까. 인생에도 손절매가 필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작은 손해에서 그칠 일이 큰 손해로 이어진다. 무작정 버티고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
- 자신의 치우침을 안다는 건 균형을 잡는 첫걸음이다. 이제껏 이를 악물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그것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삶이었다. 그리고 이제 반대편으로 치우친, 노력하지 않는 삶을 시험하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 끝 양극단을 오가는 치우친 불균형의 삶이지만, 양쪽을 다 경험하고 나면 균형을 맞추게 되지 않을까? 흔들리던 오뚝이가 바로 서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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