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아무튼, 술
- 저자 : 김혼비
- 출판사 : 제철소
- 날짜 : 27/08/2019
어찌나 인기가 좋은 책인지, 이 책을 읽으려고 예약을 하고 한 달은 기다렸나 보다. 전자책이 대출된 바로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키득거리면서 한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나니 아, 너무나 아쉬워라. 좀 천천히 읽을걸, 그 유쾌함이 너무나 일찍 끝나버렸다.
‘술책을 쓰는 술책을 쓰자’, ‘첫 술은 그런 허술에서 탄생했다’ 등의 언어유희와, 오바이트에서 발견한 포스트모더니즘, 몸을 가누지 못해 고꾸라지는 우주적 모멘트의 묘사. 첫술의 힘겨운 추억과, 힘내세요라는 말에 배꼽빠져라 웃다가 엉엉 울어버린 순간, 어색했던 씨발이 찰지게 내뱉어진 순간, 걷술을 발견한 순간, 읽는 내내 배 속이 간질간질거렸다.
알코올 중독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년간 매일 맥주를 마시던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책이자, 조만간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방에 날릴 수 있게 해준 선도적인 책이다.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오늘은 제주에 비가 내린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소주라니, 이 책의 영향을 단단히 받은 것 같다. 소주의 오르골 소리를 아는 J에게 책의 일부를 보내니, ‘그래서 소주 한 잔 하고 있어?‘라고 전화가 왔다. 아.. 내 아직 소주로 혼술 할 그런 술꾼은 아니 되오만, 곧 그 오르골 소리를 함께 듣도록 하세. 아, 날 좋은 가을밤, ‘걷술’도 함께 하세나.
비슷한 기질을 갖고 있고 비슷한 상태가 될 수 있는 나의 오랜 술친구들과 미래의 술친구들과 오래오래 술 마시면서 살고 싶다. 너무 사소해서, 너무 유치해서, 너무 쿨하지 못해서, 너무 쑥스러워서, 혹시 기분 상할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 봐, 어색해질까 봐 같은 계산 다 던져버리고 상대를 믿고 나를 믿고 술과 함께 한 발 더. 그러다 보면 말이 따로 필요 없는 순간도 생긴다. 그저 술잔 한 번 부딪히는 것으로, 말없이 술을 따라주는 것으로 전해지는 마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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