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샤모니(Chamonix)로 들어가서 시계 방향으로 10일간 걸었다. 원래는 12일로 계획했는데 10일만에 끝냈다. 남은 시간은 샤모니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다음 트레킹을 위해 리커버리.
정확하진 않지만 하루 평균 17~18km 정도(최소 8km 최대 24km) 를 걸었고 1000m 이상의 고개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매일 한라산 등반했다고 보면 될듯.
방향
대부분의 사람들이 샤모니로 들어가 레후쉬(Les Houches)로 버스 이동 후 케이블카를 타고 Bellevue로 올라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데, 난 샤모니로 들어가 모혹(Montroc)으로 버스 이동 후 (TMB에서 알려진 이름으로는 Tré-le-Champ) 걷기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몽블랑 주변을 10일동안 걷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계 방향을 선택한 이유는 사람들 무리를 피해서 조용히 걷고싶어서가 가장 컸고 Montroc을 선택한 이유는 Lac Blanc을 왠지 마지막 날 가고 싶었기 때문에. (모르고 한 선택이지만 Lac Blanc 가는 길이 6월 21일까지도 눈이 녹지 않아 길이 닫혀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매우 잘한 선택이었음)
그리고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세 나라 중 캠핑이 그나마 자유로운 프랑스를 뒤쪽에 넣어서 일정을 유연하게 조절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덕분에 비오는 날 숙소를 잡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행운이었다.
참고로 이렇게 걷는 건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 방법이고 지도와 고도표만 보고 짠, 나의 다소 실험적이었던 계획인데 개인적으론 꽤 만족스러웠다.
여러번 만난 팀은 딱 한 팀. 대부분의 구간에서 혼자 조용히 걷는 것은 좋았으나, 하루의 어느 시점에 반시계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밀려오면 봉쥬흐를 수백번은 말한듯.
마주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나는 앞으로 걸을 길에 대한 상태를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마주오는 사람들에겐 길 상태가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매우 자주 받았다.
마지막 날 마라톤 대회 코스와 겹쳐서 수많은 선수 인파를 헤쳐나가느라 애먹었던 것도 시계 방향으로 걸어서 생긴 일.
지도
종이 지도는 짐이 되긴하지만 핸드폰 배터리가 없을때 유용하긴 하다. 그리고 왠지 낭만적 ㅎ 나도 출발 전에 종이 지도를 사려고 했는데 까먹어서 못 사고 출발했다. 중간에 살곳은 없었고 레꽁따민 오니까 캠핑장에서 팔긴 하더라.
물론 가기 전에 오프라인 지도 맵스미에 gpx파일과 주요 POI 들을 다 찍어 갔기 때문에 전혀 문제는 없었다. 길에 표식이 되어있긴 하지만 길을 놓치거나 전체적인 경로를 봐야할땐 맵스미가 최고. 작은 샛길까지 다 표시되어 있고 물 마실 수 있는 곳 텐트칠 수 있는 곳도 표시돼있다. 중간에 경로를 잘못 들거나 우회해야할 때, 계획과 다른 루트를 걸을때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숙소 & 캠핑
캠핑을 기본으로 할거라 숙소 예약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맡겨둘 짐이 있어서 도착하는 날 Chamonix에 하루, 중간에 재정비를 위해 Courmayeur에 하루 미리 예약했다.
각 나라마다 캠핑 규정이 다른데, 스위스 구간은 적당한 거리마다 캠핑장이 있고, 프랑스는 와일드 캠핑이 허용되는 구역이 자주 있다. 문제는 이탈리아였는데 2500m 이하에선 와일드 캠핑도 허락되지 않고 유료 야영장도 마땅치 않다. 고민 끝에 여러가지 경우를 열어두고 Courmayeur에 취소 가능한 숙소를 하루 예약했는데 날씨도 그렇고 재정비 차원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는 TMB 루트 내에 있는 유료 캠핑장을 이용했고 프랑스로 넘어온 뒤론 와일드 캠핑을 두 번 했다. 중간에 storm warning 이 있던 날은 바로 전날 숙소를 예약했다. Les Houches에는 적정금액의 방이 없어서 샤모니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버스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일정에 전혀 문제 없었음)
날씨
전체적으로 아주 좋았다. 밤에 6도까지 떨어진 날도 있었지만 낮에는 대체적으로 15도 이상, 습도도 매우 쾌적하여 내내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걸었다.
8일차 하루 날씨가 안 좋았는데 딱 Les Houches 떨어지는 날이라 전날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숙소를 잡았다. 낮에 걸을 땐 조금씩 흩뿌리던 비가 저녁이 되자 엄청난 폭우로 바꼈다. 텐트 쳤으면 작살났을듯. 날씨 운이 매우 좋아서 내내 감사 뿜뿜.
복장
옷을 어떻게 입어야하나 가기 전에 무척 고민했는데 반바지에 반팔이 딱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할때나 고개를 넘을때 가끔 후리스를 입긴했지만 대부분 반팔로 걸었다. 선크림은 씻기 힘들어서 사용하지 않았다. 모자를 주로 사용했고 팔토시는 가끔, 다리는 그냥 태웠다.
복장만으로 한국인을 구별하는 방법. ㅎ 챙모자, 팔토시, 버프 또는 마스크 등 최대한 햇빛을 가리는 복장인 경우 99% 한국인. 배낭 어깨 쯤에 핸드폰을 넣는 작은 파우치가 달려 있으면 100% 한국인. ㅋㅋ
음식
매식이 가능한 곳에선 매식을 하고 안 되는 곳에선 자체 해결했다. 배낭엔 늘 이틀 정도 분량의 비상 식량이 있었다. 전반전엔 (Chamonix 에서 Courmayeur 까지) 한국서 싸가지고 간 누룽지가 큰 몫을 했고 후반전엔 Courmayeur 와 Les Houches 마트에서 식량을 채웠다. (빵 치즈 에너지바 등)
그리고 풍경이 너무너무 멋있어서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음식 섭취량과 할동량을 고려할 때 허기를 느꼈을법도 한데 배가 고프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진짜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단 말을 몸소 체험함.
물. 물은 세 나라에서 모두 주로 탭워터를 마셨고 산에선 계곡물도 자주 떠 마셨다. 정수과정은 따로 거치지 않았다. 걷는 중간에도 마실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자주 있어서 물을 사 마시진 않았다. 아, 꾸르메이어에서한 번 사마셨구나. 화장실에서 물 받아마시기는 왠지 찝찝해서리 ㅎㅎ 난 750ml 물병 하나만 사용했는데 1리터 정도면 더 좋을듯.
짐
음식과 물 포함 배낭 무게가 11~12kg쯤 됐을 걸로 추정. 정확한 무게는 모르겠지만 배낭이 무겁다고 느낀적은 없었다. 제주에서 한 훈련이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테이핑을 하지 않았는데 발에 물집도 안생기고 무릎도 괜찮았다. 워킹폴의 덕을 많이 본듯.
가져갔으나 안 쓴 거
- 헤드랜턴 - 매일 어두워지기 전에 잠들어 불이 필요할 일이 없었음. 자다가 화장실 갈일은 만들지 않았음.
- 우비 - 우비 입을만큼의 비가 오지 않았음. (행운이었을 뿐)
- 긴바지 - 더워서 긴 바지 입을 일이 없었음. (아이슬란드에선 필요할듯)
- 경량패딩 - 후리스와 고어텍스 쟈켓으로 충분했음. (아이슬란드에선 필요할듯)
추가로 산 거
- 오버트라우즈 - 둘째날 너덜길 눈밭을 굴러서 바지가 너덜해짐. 10€ 주고 구매.
- 가스는 230g짜리 8€에 사서 13일간 실컷 쓰고 남아서 버리고 옴.
잃어버린 거
- 손수건 - 첫날 출발 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잃어버림. 휴지로 근근히 버티는 중.
안 가져왔음 큰일날뻔 한 거
- 워킹폴 - 무릎은 물론 눈밭에서 여러번 목숨을 구해주었음.
잘 가져왔다 싶었던 거
- 작은 배낭 - 자전거 탈때, 장 볼때, side trip에 잘 씀.
- 라면 스프 - 말해 뭐하리. 더 많이 가져올걸;;
없어서 아쉬웠던 거
- 손수건 - 말해 뭐하리
- 크램폰 - 눈밭이 은근 많아서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순간이 많았음. 워킹폴로도 충분히 잘 헤쳐나갔지만 눈이 덜 녹은 6월에는 있으면 좋을듯. (무게가 문제 ㅋ)
핸드폰
심카드는 한국에서 30일짜리 두 개를 사가지고 왔다.
먼저 개통한게 데이터 전용 3G 짜린데 10G로 착각하고 마구 써댄 바람에 7일만에 거덜났다. 아주 느린 속도로 버티는 중. (전화가 안되서 불편했던 순간이 한 번 있었는데 현지인에게 도움을 청함)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선 어딜 가든 신호 안잡힌 곳이 없었는데 프랑스 일부 구간 (Col de la Seigne 에서 Col du Bonhomme 까지) 신호가 안 잡혔다. 몇 명한테 물어봤는데 마찬가지. 반나절씩 이틀동안 날씨를 확인할 수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보조 배터리는 10,000 짜리 하나 5,000짜리 하나를 챙겨왔다. 대부분의 유료 캠핑장에서 충전이 가능했지만 핸드폰이 곧 생명이라 걷는 내내 핸드폰 배터리를 매우 신경써서 관리했다. 걸을땐 비행모드로 해놓고 걷고 잠깐씩 필요할때만 사용. 그래도 어찌나 배터리가 빨리 닳는지.
캠핑장 시설에 따라 충전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다. 대부분은 여유가 있었지만 샤모니 캠핑장은 충전시설이 매우 잘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만원이라 경쟁이 아주 치열했다. 와이파이에 연결된 상태로 배터리 걱정없이 누워서 핸드폰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상세 일정
Day 1
날씨 : 맑음 8~16도
주행: Tre le Champ - Col de Balme - Trient (14.7km ↗1,045m ↘998m)
숙박 : Le Peuty Camping 8€ (+ 2€ for shower)
날씨가 매우 좋았음. 샤모니에서 버스를 타고 Montroc 으로 이동 후 걷기 시작함. 믿겨지지 않는 설산을 배경으로 한동안 쭉 완만하게 오르막을 오르다가 평지 능선길을 잠시 걸음. 오전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가 오후에 마주오는 사람들을 만남. Col des Posettes 부터 발므고개(Col de Balme)까지 다시 오르막. 발므산장(Refuge du Col de Balme) 에서 점심 먹을땐 바람이 매우 추웠음. 하산길은 쭉 가파른 숲길. 설산으로 시작해 숲길로 마무리한 하루. 16시쯤 캠핑장에 도착 후 정리.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픈 현상.
Day 2
날씨 : 맑음 8~17도
주행 : Trient - Fenêtre d’Arpette - Champex (14.9km ↗1,342m ↘1,089m)
숙박 : Relais d’Arpette (Half board 56.6CHF)
캠핑장에서 만난 아자씨 추천으로 정규코스 말고 d’Arpette을 넘어가기로 함. 얼마 안가 어제 걸은 길이 얼마나 편안한 길이었는지 알게됨. 정상에서의 풍경은 무진장 멋졌으나 내려갈 긴장감에 압도당함. 올라갈땐 너무 가팔라서 위험, 내려갈땐 눈으로 뒤덮힌 너덜길이라 위험. 내려오다 자빠져 여기저기 손해를 입었으나 살아서 내려온 것만으로 감사했음. 이후로 모든 길의 기준이 되어버림.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장의 하프보드를 이용했으나 가격 대비 매우 별로였음.
Day 3
날씨 : 맑음 4~15도
주행 : Champex - La Fouly (19.0km ↗866m ↘860m)
숙박 : Camping des Glaciers (14.6 CHF)
기온은 높지 않았는데 매우 덥고 힘들었음. 고개를 넘지 않아 수월했지만 이전 이틀보다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풍경에서 길게 걸어 지루할 정도였음. 주말이라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모두 많았고 캠핑장에도 사람이 많았음. 점심은 행동식, 저녁은 캠핑장에서 파는 간단식으로 해결하고 맥주도 한 병 마심. 캠핑장 시설은 여러가지로 만족스러웠으나 토요일이라 밤이라 파티를 즐기는 인간들로 잠을 설침. 가장 쉬워서 가장 지루했던 날.
Day 4
날씨 : Mostly Sunny 8~19도
주행 : La Fouly - Grand Col Ferret - Val Ferret (20.2km ↗1,039m ↘980m)
숙박 : Camping Grandes Jorasses (14.7€)
프랑스 국경 고개인 페렛고개(Grand Col Ferret)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입. 이틀전 캠핑장에서 만난 영감님과 보나띠 산장에서 만나 몽드라삭스(Mont de la Saxe)에 올라가 와일드 캠핑을 할 계획이었으나 storm warning으로 취소. 일찌감치 마무리 하고 근처에 있는 사설 캠핑장으로 차타고 이동. Val Ferret에선 폴렌타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꾸르메이어(Courmayeur) 시내에 나가 시내 구경하고 저녁 식사.
Day 5
날씨 : 오전에 하얀구름 오후에 먹구름 10~20도 (thunderstorm warning 이 있었음)
주행 : Val Ferrt - Mont de la Sax - Courmayeur (14.5km ↗852m ↘1,238m)
숙박 : Hotel Dei Camosci (69€)
오후에 비 소식이 있어 아침 일찍 걷기 시작. 몽드라삭스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라 페이스 조절하며 천천히 걸음. 그 와중에 길을 한번 놓치고 모자도 떨어뜨려서 쓸데없이 왔다갔다 함. 꼭대기 풍경에 반해 한참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서 급 하산. 날이 괜찮아보여 중간에 산장에서 맥주 한 잔 마시던 중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산을 서두름. La Saxe라는 작고 예쁜 작은 마을을 지나 숙소에 14시쯤 도착함. 충전 빨래 정돈 등 개인 정비 후 근처 까르푸에서 장봐서 저녁 해먹고 남은 일정도 재정비.
Day 6
날씨 : 흐림 12~20도
주행 : Courmayeur - Col de la Seigne - Les Mottets (16.8km 5:48 ↗1,040m ↘637m)
숙박 : Wild Camping
11시에 숙소 체크아웃후 버스를 타고 아스팔트 구간을 점프하여 Val Venny로 이동. 계획상 쉬는날이었지만 날씨도 그렇고 컨디션이 괜찮아 12시쯤 걷기 시작. Val Venny 부터 고개를 향해 잘 닦인 오르막을 따라 슬슬 걸음. 주말이 아닌데도 미처 봉주르를 다 못할만큼 밀려오는 사람이 많았음. Combal 산장은 경로 밖에 있어서 패스. Elisabetta 산장 앞에서 간단히 점심 먹고 출발한지 4시간만에 Col de la Seigne 도착. 다시 국경을 지나 프랑스로 넘어옴. 두 시간 정도 걸어 내려오다 Les Mottets 근처에서 괜찮은 박지를 발견하여 정착. 계곡물에 씻고 멋진 풍경에서 배를 채우고 매우 만족스러운 저녁을 보냈으나 해가 넘어가자 바람이 불기 시작해 12시까지 3시간 정도 텐트 안에서 노심초사 바람과 싸움. 핸드폰 신호도 안 잡혀 답답해 죽을뻔.
Day 7
날씨 : 구름 많음 14~25도
주행 : Les Mottete - Les Chapieux - Col du Bonhomme - Les Contamines Montjoie (24.5km ↗1,106m ↘1,759m)
숙박 : Camping du Pontet (11.4€)
가장 긴 거리를 걸은 날. 밤새 바람과 싸우느라 잠도 설친데다 인터넷도 안되고 날은 흐려서 풍경도 별로. 원래 가려고 했던 Tête Sud des Fours 을 포기하고 정규코스인 Les Chapieux 를 통과함. 원했던 길을 못 간데서 오는 짜증과 여러가지 피로함- Col du Bonhomme 주변엔 눈이 많아서 피로했고 내려가는 지루한 길의 더위와 발가락 통증 - 에 매우 지쳤음. 가장 힘든날 먹으려고 남겨뒀던 라면을 이날 해치움.
Day 8
날씨 : 흐리고 비 (오후 늦게 폭우)
주행 : Les Contamines Montjoie - Col de Tricot - Les Houches (19.6km ↗1,328m ↘1,571m)
숙박 : Chamonix Lodge (72.22€)
이른 아침 텐트를 흔드는 강한 바람이 불길하게 여겨져 후다닥 짐 정리하고 0630 출발. 날은 흐렸고 빗방울이 당장이라도 떨어질듯 검은 먹구름이 잔뜩 낌. 열심히 걸어 진도를 쭉빼고 트리콧 고개(Col de Tricot)를 넘기 전 미야지 산장(Refuge de Miage)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랑 커피로 배를 채움.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후다닥 고개를 넘어 하산. 날씨가 잠깐 개었길래 벨레뷰(Bellevue)에서 레우슈까지 걸어서 내려옴. 이 길이 매우 지루했음. 버스 타고 샤모니 숙소에 와서 셀프 체크인. 씻고 나오니 폭풍처럼 쏟아지는 비. 휴.
Day 9
날씨 : 아름답게 구름 7~16도
주행 : Les Houches - Bellachat (8.1km ↗1,152m ↘54m) + side trip 2.5km
Sleep : Wild camping
가장 짧게 걸은 휴식의 날. 숙소에서 나와 레우슈로 버스를 타고 이동. 이틀간 먹을 음식과 물을 사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서 오름. 비가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땅도 촉촉하고 푹신푹신해 마치 케이크 위를 걷는 느낌. 전망 좋은 곳에 앉아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3시간 반만에 어느새 캠핑 사이트. 너무 이른 시간이라 Lac du Brévent으로 사이드 트립을 시도하였으나 길이 눈으로 덮혀있어 그냥 돌아옴. 살다살다 텐트에 누워서 눈덮인 몽블랑을 보는 호강이라니.
Day 10
날씨 : 구름 한점 없이 맑음 (8~19도)
주행 : Bellachat - Col du Brévent - Flégère - Lac Blanc - Lacs de Chéserys - Tré-le-Champ (21.33km ↗1,120m ↘1,884m)
숙박 : Camping Les Arolles (13.2€)
날씨도 풍경도 최고의 날! 가장 오랜 시간 가장 다이나믹한 길을 걷고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장 멋진 풍경을 경험함. Le Brévent을 지나 미끄러지면 골로 갈 눈밭을 수차례 건너 Planpraz에 도착. 마라톤 골인 지점의 축제 분위기를 실컷 즐기고 난 뒤 플레제르(Flégère) 까진 밀려오는 주자들을 헤치고 나가느라 진땀을 뺐음. 블랑호수가(Lac Blanc)이 눈으로 덮혀있어 실망했지만 Cheserys 호수(Lacs de Chéserys) 가 충분히 멋졌음. 다 걷고 샤모니 시내로 돌아오니 주말에 행사까지 겹쳐 캠핑장이 full. 종종대다 어두워지기 전 다행히 캠핑장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음. 무사 완주를 축하할 새도 없이 씻자마자 바로 전사. ㅋ
총평
힘들었지만 하나도 안 힘들었다. 내일 당장 같은 길을 다시 걸으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길었지만 짧았고 짧았지만 길었다. 하루하루가 모두 다 소중했고 새로웠고 즐거웠다. 모든 순간 충만했고 행복했다.
매일 걷다보면 필요한 근육이 저절로 자릴 잡는다는 것. 걸을수록 몸은 가벼워진다는 것. 이른 아침에 숲길을 걷는 것은 날씨에 상관없이 좋다는 것. 자연속에서 가장 충만해진다는 것. 이것들은 변함이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