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태백에서 속초까지 라이딩을 다녀왔다. 동해안 자전거길은 2017년 5월에 달린 적이 있고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 일행이 생겨서 오랜만에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주말을 피해 월요일에 서울을 출발해 금요일에 다시 서울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다녀왔다.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에 앞서 양평 중미산에서 1박2일의 MT(?) 비슷한 일정이 있어서 월화는 짐차 끌고 중미산 다녀와서 태백까지 기차로 이동하는데 보냈고, 수목금에 태백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를 탔다.
출발지로 태백을 선택한 이유는 속초에서 200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시 중, 고개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 울진에서 삼척까지 고개가 많지만 태백에서 삼척까지는 거의 다운힐. 게다가 양평에서 태백까지 가는 기차가 있어서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던게 큰 이유였다. (다만 자전거를 가지고 기차를 타는 일은 처음이라 고민과 연구를 많이 하였음)
4박 5일 중 1박은 휴양림 MT, 1박은 태백 숙소, 2박은 바닷가에서 야영. 모든 끼니는 매식을 했다. 밥을 사먹으면 먹는 거에 신경쓸 필요없고 짐도 간소해진다. 텐트,침낭,매트만 챙기면 된다. 이번 여행엔 특별히 우쿨렐레를 챙겼다. 짐덩어리가 하나 늘어나는 거라 고민했지만 느긋하게 베짱이처럼 여행해보고 싶어서 ㅋ
짧아서 살짝 아쉬운감이 있는 여행이었지만 2024년 상반기 자전거 여행은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10월이나 되야 또 갈 수 있을듯.
일정
6.10 월 (아신역에서 중미산 자연휴양림까지)
- Riding : 12km | Elevation Gain: 419m | Course
오늘의 목적지는 중미산 휴양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아신역까지 지하철로 점프했다. 아신역에서 출발 중미산 자연휴양림까지 12km 라이딩. 평균 6.5% 정도의 평범한 업힐이라 그럭저럭 오를만 했는데 날이 더웠다. 더럽게 더웠다. 그늘 없는 아스팔트 오르막을 달리는 건 정말 별로였다. 그래도 숲속 오두막 집에서 보내는 밤은 좋았다.
6.11 화 (중미산 자연 휴양림에서 양평에서 태백으로 기차 이동)
오전에 모임 해산 후 양평까지 내리막을 달렸다. 땡볕에 낑낑대고 올라간 게 아까워서 아껴서 천천히 조금씩 내려왔다.
13시쯤 양평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태백으로 이동, 태백 숙소에 16시쯤 도착했다. (무궁호화호에 자전거 실은 썰은 아래에 있음) 자전거를 기차에 처음 실어봐서 꽤 긴장한 상태였는데 열차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숙소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사장님이 추천해준 황지연못공원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이렇게 점프해서 자전거 타고 슬슬 동네 구경하는 것도 좋다. 나중에 미니벨로로 전국일주 한 번 해봐야지.
6.12 수 (태백 - 건의령 - 삼척 - 동해 - 옥계)
- Riding : 88km | Elevation Gain : 818m | Course
본격 라이딩 시작. 원래 태백에서 통리쪽으로 내려올 예정이었는데 어제 기차에서 만난 역무원 아저씨가 추천해준 삼수봉, 건의령으로 경로를 바꿨다. 약간의 업힐은 곧 경치로 보상받았지만 내려오는 길이 별로였다. 국도를 피해 꼬부랑길을 달렸는데도 지역 특징인지 덤프트럭이 너무 많았다. 위험한 건 둘째치고 먼지와 매연이 괴로웠다.
삼척에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남은 구간을 함께할 일행을 만나서 재정비하고 출발. 이후 각자 속도로 편하게 달리다가 저녁에 야영할 곳을 찾기 위해 망상에서 다시 만났다. 인적 드문 옥계해변에서 야영을 했다.
둘째날 (옥계 - 경포 - 주문진 - 하조대)
- Riding : 78km | Elevation Gain: 572m | Course
5시쯤 일어나 텐트 밖을 내다보니 딱 애국가 일출각. 이런저런 소음에 잠을 제대로 못잤지만 경건하게 일출로 아침을 맞고 충만한 마음으로 출발.
일행과는 각자 편하게 달리다가 점심에 경포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정동진과 강릉을 지났고 경포대까지 가는 길엔 자잘한 업다운이 몇 개 있었다. 그리고 무진장 더웠다.
11시쯤 경포대 근처에서 만나 막국수를 한 그릇씩 먹고 다시 해산. 경포호 공원 나무 그늘에서 베짱이 놀이를 하며 더위를 피하다가 오후에 다시 라이딩 시작.
사천, 주문진, 양양을 거치는 동안 펼쳐지는 다양한 해변 풍경이 재미있었다. 햇빛은 뜨거웠지만 바람이 밀어줘서 그나마 수월했다. 18시 동산포에서 일행을 다시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영지를 찾아 다시 북진, 하조대 해변에 텐트를 쳤다.
셋째날 (하조대 - 낙산 - 속초)
- Riding : 46.3km | Elevation Gain : 343m | Course
편의점에서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출발했다. 속초까지는 약 25km. 오전 시간이 아주 널널했다. 동호해변, 송전해변 뜽 이름도 처음 듣는 작은 해변들에 괜히 들어가봤다. 해도 구름에 가려져 달리기에 딱 좋았다. 낙산 해변에서는 돗자리 깔고 앉아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실컷 여유를 부렸다.
대포항에서 각자의 갈 길로 해산. 나는 속초 해변, 암벽등반이 취미인 일행은 국립산악박물관을 선택했다. 속초 해변에 도착해 솔숲에 앉아서 쉬다가 왕년에 자전거 좀 타셨다는 노부부를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까지 얻어먹었다. 강아지 해피도 너무 귀여웠다.
산악박물관에 간 일행이 여긴 꼭 와봐야 한다고 전화를 걸어와서 일단 출동. 얼떨결에 인공 암벽장에서 클라이밍을 체험했는데 재미있었다. 버스시간 맞춰 먼저 속초로 내려와 영랑호를 한 바퀴 돌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귀경.
경험
무궁화호 기차에 자전거 실은 썰
왜 기차를 타야했나?
버스를 타는게 가장 편하고 쉬워서 늘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양평에서 태백으로 가려다보니 버스가 마땅치 않았다.
양평에는 버스가 없어서 동서울로 가서 버스를 타고 태백으로 가야하는데 이 경우 양평에서 동서울까지 56km 라이딩 (4시간 정도 소요), 동서울에서 태백까지 버스 35천원 4시간. 총 8시간, 35천원이 필요하다. (여주 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었지만 직행이 없고 강릉에서 환승해야 해서 패스.)
한편 양평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2시간 30분, 12천원 소요. 기차를 타는 것이 돈과 시간을 세 배 가까이 절약하는 방법이어서 어떻게든 기차를 타기로 했다.
접이식이 아닌 자전거를 가지고 기차를 타본 건 처음이다. 게다가 2022년 11월부로 무궁화호의 자전거좌석이 폐지되었다는 비보. 사전조사 끝에 캐링백에 넣지 않아도 자전거를 분해 결박해서 통로 짐칸에 실을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모든 일이 처음이 어려운 법. 한 번 하고 나면 두번째 부터는 쉽다.
준비
- 캐링백이 하나 있긴 한데 로드용이라 여행용 자전거는 커서 바퀴를 두 개 다 빼도 안 들어감. 한참을 캐링백과 씨름하다 포기.
- 캐링백이 없어도 분해해서 잘 결박하면 괜찮다는 정보가 있길래 캐링백 없이 포장하기로.
- 이런 저런 방법을 시도해보고 여차하면 바퀴 두 개와 핸들바, 페달까지 분해할 작정으로 일단 준비 완료. (연습을 해본 것이 포인트)
- 준비물은 바퀴 고정을 위한 찍찍이 끈 2개, 포크 보호를 위한 약간의 포장재와 테이프.
분해, 포장
- 휴양림에서 식자재 포장 뽁뽁이를 미리 챙겨두고 양평 시내 다이소에 들러 포장용 종이 테이프를 하나 삼.
- 양평 역에 도착해 승강장으로 내려와 분해 포장 시작.
- 앞 뒤 휠, 핸들바까지 분해하면 크기는 작아지지만 무게 중심도 불안하고 체인이며 짐받이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음. 과도한 분해시 이슈로 이어질 수 있어서 일단 앞바퀴만 빼고 핸들바만 고정함.
- 앞바퀴는 빼서 오른쪽 페달위에 올려 프레임 옆에 찍찍이로 고정하고, 포크 끝부분에 포장재를 대고 테이프로 칭칭.
- 핸들바는 90도 돌려 스템백을 쿠션삼아 고정함.
탑승 및 보관
- 양평역은 출발역이 아니라 잠시 열차가 정차한 틈을 타 짐을 다 실어야 하는데 지하철처럼 열차 문 위치가 정확하게 표시되어있지 않아서 눈치껏 움직여야 함.
- 열차가 4칸 밖에 안되길래 기차 치고 짧다고 생각했는데 청량리에서 동해까지 운행하는 태백선은 4량 구성임. 참고
- 열차 도착 후 사람들이 다 승하차 한 뒤, 자전거를 들고 후다닥 올라가 벽에 대충 기대두고, 다시 내려와 남은 짐 패니어들을 들고 탑승. 서두르긴 했지만 두 번 왔다갔다 하는 시간은 충분했음.
- 3호 열차를 예약했는데 사람이 적은 문으로 일단 타고 보니 1호 2호 연결칸에 타게 됨. 일단 짐 보관 공간이 있길래 자전거를 세워두고 쓰러지지 않게 테이프로 고정.
- 예약한 자리가 멀기도 하고 혹시 몰라서 연결칸에 서서 가려고 폼 잡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역무원 아저씨가 2호차 짐칸 근처로 바꿔주심.
- 자전거도 분해했으니 괜찮다고 하심. 기차에 자전거 태우기 성공!
TIL (Things I Lear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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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버스타고 여행다니기에 참 좋은 곳이었구나.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버스를 타고 어딜 가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서울에서만 살아봐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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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다시 기차를 타야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자전거에 따라 작전이 달라지겠다.
① 미니벨로는 평일 주말을 막론 지하철, 버스, 기차 어디든 실을 수 있는 천하무적이니 논외.
② 로드 바이크라면 캐링백을 사용. 작고 가벼우므로 캐링백에 넣어서 짐칸이나 맨 뒷좌석 뒤쪽 공간에 넣어도 될 것 같긴 한데.. 내가 로드를 가지고 기차를 탈 일은 없을 듯.
③ 여행용 자전거를 가지고 다시 기차를 타야 한다면, 캐링백은 안 쓰고 자전거를 더 작게 만들고 포장재를 이용해 완벽하게 포장할 듯. (포장재는 다이소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음.)
④ 열차 편성에 따른 편의시설을 미리 확인하고 짐칸이 있는 칸을 예약할 것. (태백선 무궁호화는 2,3호 연결칸에는 짐칸이 없음)
그치만 왠만하면 기차는 안 타기로 한다.
암튼 결론은 자전거 여행은 그래도 버스가 최고다. 버스 만세!!
야영
동해안 자전거길의 대부분의 해변에서는 야영, 취사 금지다. 2017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어느 해변애 가나 야영금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먹고 마시는 유흥적 캠핑은 필연적으로 소음과 쓰레기를 생산하기에 못하게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지나가다가 손바닥만한 텐트 하나 펴고 잠만 자는 입장에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자연보호니 뭐니 하는 명목이지만 자연 보호를 하기 위해서라면 예외가 없어야 한다. 파라솔이니 평상이니 한여름 해변 경관 훼손에 앞장서는 게 누구인가? 사이트당 수 만원의 돈을 받아가며 지들 배를 불리는 건 괜찮은가? 암튼 말도 안되는 개소리다.
유료 야영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텐트 하나 치는데 6-7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도 지나치게 과하다. 그 돈이면 숙소를 잡지. 다행히 일행도 같은 입장이어서 숙영지를 정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어쨌든 난 하지 말라는 일은 왠만하면 안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게 내 맘이 편해서다. 하지 말라는 데를 피하다보니 야영할 곳을 찾는게 쉽지는 않았다.
첫날은 망상 해변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마땅치 않아서 옥계까지 갔다. 옥계에 꽤 넓은 송림이 있었는데 모두 야영 금지라 주변 상인분께 물어보고 양해? 허락?을 구했다. 송림에서는 하지 말라고 되어 있어서 방치된 컨테이너 사이 콘크리트 바닥에 텐트를 쳤다.
둘째날도 주문진부터 잘 곳을 찾다가 하조대까지 갔다. 하조대 메인 해변을 한참 지나 한적한 넓은 공터 근처 폐건물 앞 작은 솔밭 안쪽 해변에 텐트를 쳤다.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선호하고, 텐트도 가능하면 인적이 드문 곳에 친다. 무섭지 않냐고 하는데 사람이 무서워서 사람을 피하는 거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텐트를 치면 꼭 와서 한 마디씩 한다. 혼자 다니냐, 위험하지 않냐 등등.. 무서운 건 둘째치고 귀찮고 성가시다. 위험하다고? 자전거 타고 차도를 달리는 건 위험한 거 인정, 하지만 사람 없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자는 게 뭐가 위험할까..? 젊고 예쁜 처자였으면 위험했으려나? 무서웠으려나? 모르겠다.
박지 선택에 정답은 없다. 작년엔 괜찮았던 장소가 내년엔 안 괜찮을 수 있다. 그때는 이만큼 달렸는데 이번엔 그만큼 못 달릴 수 있다. 그저 여행중 내 상황에 맞춰 그날그날 찾는게 최선이다.
잘 곳이 정해져 있으면 한결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어디서 잘지 모르는 상태로 페달을 밟는 것도 그 특유의 재미가 있다. 불확실성이 주는 긴장과 설레임이랄까. 설레임 반 걱정 반의 두근거림은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왠지 모를 안도감으로 바뀐다. 적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두워질수록 잘 곳을 정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게 있다.
한국에서 캠핑을 하며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제주만한 곳이 없지만 동해안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많아지는 휴가 시즌에는 유료 캠핑장을 이용해야 할 듯.
정리
- 라이딩과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동해 바다. 제주에 없는 업다운이 재미를 더한다.
- 대부분의 해변에서 캠핑은 불가. 재주껏 숙영지를 찾아야 한다.
- 숙소, 공중 화장실, 식당, 편의점 등은 아주 많다.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 동해안은 초여름 자전거 여행 최적의 코스인 듯.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