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t Nichols Hut - Pine Valley Hut - Acropolis (side trip)
0630 기상 0730 출발. 텐트를 안접어도 되니 시간이 줄기도 했지만 이제 짐을 싸고 푸는데도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늘은 마지막 날이지만 우리는 하루 Pine Valley Hut 로 가서 하루 더 시간을 보낸다. 0905 그 갈림길에 도착했다.
외나무 다리suspension bridge. Junction 에서 간단히 morning tea를 하고 우리는 Pine Velly 방향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외나무 다리가 나왔다.
이 다리는 한 번에 한 명만 건널 수 있다. 언니가 다 건너가고 내가 건너간다.
Hut으로 가는 길은 축축하고 오래된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냈다. 이런 깊은 숲속에 hut 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 였고, 비까지 오는데 행여나 길을 잃을까 하는 걱정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막대 표식을 따라 걷는다. 땅은 온통 얽히고 섥힌 나무 뿌리들로 뒤덮혀 있는데 영화에서처럼 이것들이 갑자기 꿈틀거리며 살아나 내 발목을 확 잡아 삼켜버리는 상상을 하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Pine Valley Hut. 음산한 나무 숲을 지나고 두시간만인 1100에 Pine Valley Hut 에 도착했다. 뭔가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Pine Valley Hut에는 Overland track을 걷는 사람 이외에도 여러 코스에서 온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텅 빈 hut을 새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그룹을 비롯해 이곳을 base camp 삼아 몇일동안 묵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여러 팀이 이미 hut을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도 날씨를 감안해 hut에서 자기로 하고 떠나는 사람들의 자리를 넘겨 받았다. 침낭을 펼쳐 자리를 확보해 두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생각해둔 두가지의 side trip이 있었는데 Acropolis와 Labyrinth. 이곳은 Overland Track의 일부가 아니라서 책자에서 얻을 수 있는 side trip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지만 우리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벽에 걸린 안내문의 도움을 받아 6시간 30분이 걸린다는 Acropolis 아크로 폴리스에 먼저 도전하기로 했다. 여느 side trip 처럼 별 준비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는데 어제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매우 추울것이라며 장갑과 모자등을 챙겨가라고 알려주어 방수바지와 장갑 등 여러가지 장비를 추가로 챙겨서 길을 나섰다.
Acropolis. 1150분쯤 출발. 숲을 걷다가 갑자기 시작된 오르막. 여기까지 오는 1km정도의 오르막은 지금까지 중 정말 최고의 경사를 가진 다락방 오르막이었다. 그리고 잠시 나타난 평지.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자니 눈앞에 더 큰 것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미친 다락 경사와 암벽 등반. 일단 시작은 했지만 정상은 오늘도 구름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주변은 온통 아슬아슬한 암벽뿐이다. 길은 무척 험하고 위험해 보였다.
코너를 돌자 펼쳐진 이 장면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키보다 높은 암벽을 가까스로 기어 올라가면서 내려갈 일을 더 걱정 했던건 아마 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중간에 내려오는 팀을 몇팀 만났는데 그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가다가 돌아왔을 것이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많이 올라왔다. 이제 구름 위로 올라간다. 돌아 올 일이 걱정이 되면서도 계속 걷고 있는걸 보니 첫날 Barn Bluff 때 보다 많이 용감해 졌다.
출발한지 2시간 만에 무사히 정상에 도착했다. 거세고도 차가운 바람.
힘들게 정상에 올랐다. 뿌듯하다. 다행히 정상에는 우리 말고 한 팀이 더 있어서 마음을 살짝 놓았다.
아버지와 아들이었는데 아이는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보니 기특하지만 그 아버지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부자이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보기 좋은 풍경이다.
정상은 역시나 짙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지만 바람이 불면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풍경을 드러냈다.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눈도 쌓여 있다.
기념 사진 한 장 찍고.
거친 바람에 맛서 눈물 콧물을 닦으며 사진을 몇장 찍고 바람을 피해 잠시 앉아 있다가 추워서 이내 하산하기로 했다.
올라온게 아까워서라도 더 있고 싶지만 너무 춥고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 전에 내려가기로. 내려오는 길은 비때문에 더 미끄럽고 땅은 진흙탕에다가 다리는 후들후들.
가파른 암벽을 내려와 잠시 숨을 돌린다. 산신령 처럼 늠름한 자태의 선영 언니. 이제 뭐 거칠것이 없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내려오다가 결국엔 다와서 작은 사고를 쳤는데 내리막에서 딛고 내려가던 워킹폴이 땅으로 폭 빠지면서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휘어서 못쓰게 되버렸다. 온몸은 땀과 비로 쫄닥 젖고 허벅지엔 타박상. 만신창이가 되어서 hut에 도착하니 1630. 긴 하루였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언니는 오자마자 난로에 불부터 피우기 시작했다. 조개탄 난로인데 마른 나무도 없고 종이 한장도 귀한 이 곳에서 불 붙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 결국 조개탄에 불을 붙이고 hut에 온기를 불어 넣었다.
난로 옆에서 정성스레 신발을 말리고 짐을 정리하며 저녁 시간을 기다렸다. 작은 hut이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식탁도 붐비는 바람에 우린 조금 늦게 6시쯤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짐 정리를 하다보니 식량 주머니도 이제 다 비어가고 가방도 헐렁하다. 이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일은 제발 마른 신발을 신게 해주세요, 머리를 감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고된 몸을 눕혀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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