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608 수 강릉에서 경주로 버스 이동. 경주 시내 자전거 관광(대릉원, 첨성대, 최부자집). 한옥 민박.
- 160609 목 경주 불국사 라이딩. 부산으로 버스 이동. 모텔.
경주로 이동
6시반 기상. 눈을 뜨자마자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정해진 계획은 없었지만 적어도 데비 출국 하루 전날 서울에 와야하니까 이것만은 확실하게 미리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항공권은 늘 the earlier the better.
오늘은 경주로 가는 날이다. 버스를 미리 예약하지 않아서 터미널에 가봐야 좌석 상황을 알 수 있었기에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아침식사는 숙소에서 제공되었는데 우리가 손에 꼽는 아름다웠던 한끼 중 하나였다. 주인댁 어르신들과 한 상에서 먹는 아침 식사. 각종 나물과 순두부가 아주 맛깔났다.
커피도 한잔 하고 짐을 챙겨 바로 출발. 자전거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 아침이라 길에 차가 많았다.
9시 10분전에 터미널 도착.
경주 가는 표를 바로 구할 수 있으면 경주로 가고, 안되면 포항으로 가기로 했다. 경주가는 표를 달라고 했더니 포항가서 갈아타라고 한다. 음. 일단 포항가는 표 발권.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싣는데 칸 하나만 쓰라고 기사 아저씨가 면박을 줬다. 쳇. 사람도 없구만.
우리나라의 버스 기사들은 대체로 불친절하다. 짐 싣는건 당연히 안도와주고 뭘 물어봐도 건성으로 대답. 난폭 운전은 기본, 욕지거리는 옵션이다. 어딜봐도 만족과 자부심보다는 불만과 짜증이 흘러 넘친다.
차에는 무정차라고 쓰여 있었으나 동해 삼척 울진 다 들러서 간다. 그러려니.
강릉에서 포항까지 약 4시간. 하지만 현가이드는 쉴 수가 없다. 계획없는 즉흥적인 이동에 무엇을 먹고 봐야할지 알아보는 것은 나의 몫이다. 일정을 체크해야 하고 교통편을 알아봐야 하고 숙소도 예약해야 한다.
낼모레 일본에 갈 페리 예약을 확인하고 자전거를 가져가는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려 전화를 했는데 이런 ㅆ. 망했다.
배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단다. 배에는 자전거를 당연히 가지고 탈 수 있을거라는 경험에 의거한 추측으로 확인도 없이 예약한게 화근이었다.
일본에서의 일정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자전거와 짐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걱정이었다. 부산엔 아는 사람도 없고 맡길데도 없는데 아무데나 묶어두고 갈 수도 없고. 숙소에 맡겨둬야 하나 경찰서에 맡겨둬야 하나.. 아 골치가 아프다.
업친데 덥친 겪으로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은 운항이 중단되었단다. 부산에서 페리를 타고 제주로 가려고 했는데. 망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건 일단 일본 갔다와서 생각하기로.
비가 온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그냥 그렇다. 포항에 떨어지면 30km 남짓되는 경주까지 자전거를 타면 어떨까 했는데 리서치를 해보니 자전거 길이 없고, 비소식이 있어서 불안하기도 하고. 그냥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무엇보다 뇌가 피곤했다.
포항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후딱 경주행 차표를 사러 가니 시간도 좌석도 아무 것도 없는 표를 줬다. 또 후딱 자전걸 싣고 승차.
포항에서 경주까지는 버스로 약 40분 소요. 여러가지 문제로 골치가 아팠지만 일단 당장 오늘 묵을 경주의 숙소부터 구해야 했다. 경주에 왔으니 한국의 전통 한옥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대릉원 근처의 한옥 게스트 하우스로 정했다.
일정을 고민해야 하고, 경로를 찾아야 하고, 표를 예매해야 하고, 길을 찾아야 하고, 지도를 봐야하고, 먹을 것을 고민해야하고, 식당을 찾아야 하고, 숙소를 찾아야 하고.. 여행하며 나는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경주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는데 한것도 없이 피곤이 밀려왔다. 바로 숙소로 직행. 일단 가서 좀 쉬어야겠다.
전화로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는 너무 예뻤다. 비가 온 뒤의 촉촉한 풍경.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조금 있으려니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다 좋은데 방이 좀 작았다. 주인언니가 우리의 상황을 보고 나름 업그레이드 해준건데 그래도 뭔가 답답한 느낌.
데비도 마찬가지였는지 경주를 떠나며 재밌고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다시는 한옥에 묵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ㅋㅋ
짐을 부려놓고 잠시 쉬었다가 자전거를 끌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부실했던 점심에 비해 너무나 컸던 정신적 에너지 소모량을 보상하기 위해 분식 흡입. 아 이건 데비가 먼저 먹자고 했다.
경주 관광
자 이제 본격적인 경주 관광 시작.
돌담길과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았던 대릉원.
옆에 있떤 꽃밭이 더 좋았던 첨성대.
무궁환줄 알았는데 접시꽃이란다.
문닫기 바로 전에 들어가 후딱 보고 나온 최씨고택.
대릉원, 첨성대, 최부자집까지 둘러보고 숙소로. 오늘의 일정은 여기까지.
한 도시에 버스를 타고 와서 그 주변을 자전거로 둘러보는 것도 아주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하염없이 길에서 페달을 밟는 시간을 줄이고, 관광하는 시간을 확보 할 수 있으니 버스의 장점과 자전거의 장점을 합쳤다 할 수 있겠다.
저녁은 대릉원 앞에 있는 쌈밥집에서 먹었다. 상다리 부러지게 먹고 나니 배가 터질것 같다. 데비는 이제 이렇게 거대한 밥상은 그만 먹잔다.
방바닥에 엎드려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방법을 연구했다. 장흥, 완도, 목포, 여수. 제주로 가려면 어디로 가는게 가장 좋을지 - 배삯 및 이동시간,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버스 이동시 제주 배시간과의 연결 여부, 자전거 가능 여부, 주변 관광지 등 - 을 고민하다가 결국 목포에서 타고 가기로 했다.
일본에 갈 때 자전거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밤이 깊도록 고민했다. 최상의 경우는 숙소에 맡겨두고 가는 것, 최악의 경우는 여관방을 빌려 넣어두고 가는 방법. 돈지랄이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돈을 아끼려고 하니깐 머리가 아팠는데 돈을 쓸 생각을 하니 고민이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아 역시 돈이 좋아.
경주에서 부산으로
8시까지 늦잠을 잤다. 데비에게 잠자리가 어땠는지 물어보니 잘 잤댄다. 난 요가 얇아서 불편했는데.
정리하고 문을 열고 있으려니 주인장이 직접 아침식사를 방으로 가져왔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해서 숙소에 맡겨두고 불국사로 출동. 새로운 데비의 저지가 예쁘다.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까지는 자전거도로 표시가 되어 있는데 자전거 도로라기 보다는 그냥 보행자 길이었다. 몇 년 동안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은 것처럼 길이 험했다.
게다가 마지막엔 엄청난 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나는 왜 불국사가 토함산에 자락에 있다는 것을 생각 못했을까. 샤방샤방 자전걸 타고 다녀오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땀을 뻘뻘 흘리는 업힐끝에 불국사에 도착하니 아 불국사고 나발이고.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수학여행온 아해들. 아 쫑알쫑알 시끄럽고나.
나야 와봐서 그렇다 쳐도 데비도 힘들게 온거에 비해서 별 큰 감동은 없는 듯 했다.
휘적휘적 불국사를 대충 둘러보고 나와서 비빔밥로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데비에겐 불국사보다 이곳의 비빔밥이 더 감동이었나보다. 두고두고 맛있었다고 얘기했던 불국사 비빔밥.
맛있는 비빔밥으로 배도 채웠겠다, 다시 경주시내로 돌아갈 시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용 쓰며 올라온 그 길을 쏜살같이 내려왔다. 비빔밥에 산삼이라도 들었었나 데비가 앞장서서 전에 없던 속력을 냈다.
예정대로 경주 국립 박물관에 들렀다.
고작 200년의 역사를 가진 호주. 아니 역사랄 것도 딱히 없는 호주에서 온 데비는 반만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한국의 역사를 매우 놀라워했다.
역사에 대해서라면 나도 젬병이라 데비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경주가 벌써 네번짼데 신라에 대해 아는게 제대로 없었다. 직접 찾아다녀보니 위치는 이제 좀 알겠다만. 아 공부좀 해야겠다.
2시쯤 숙소에 다시 돌아와 짐을 찾아서 시외버스 터미널로.
부산에 버스터미널이 세개나 있었는데 우리의 동선과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부산 서쪽에 있는 사상터미널로 가는게 가장 합리적이였다. 고속버스 터미널엔 노포동 가는 버스 뿐이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사상으로 가는 티켓을 샀다.
막간을 이용해 찰보리빵에 커피 한잔.
차시간에 맞춰 미리 차에 자전걸 실으러 가니 다짜고짜 안된다고 ㅈㄹ하시는 기사님. 계속 이렇게 여행 다녔다고 하니 차를 차에 실어주는 것은 원래 안되는 일이라는 주장이시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한번만 봐주세요 하니 계속 궁시렁 거리시면서도 차문 열어주고 자전거 싣는 것도 도와주신다. 무슨 심술이 나셨는지 참..
부산까지 가는 동안 나의 최대 고민은 오늘 어디서 자고 또 자전거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오늘 어디서 자느냐도 문제지만 어제밤부터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자전거. 일본에 가있는 동안 자전거를 안전하게 맡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평일이었기에 숙소를 찾는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숙소는 자전거를 보관해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했고, 사상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야 했다. 몇군데 전화를 해본 게스트 하우스들은 자전거를 보관해준다고 했지만 사상 터미널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결국 부산에 내려서 직접 부딪혀 보기로 했다.
버스 터미널에 내리니 주변에 늘어선 모텔들. 가장 리뷰가 좋은 호텔을 골라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더니 아저씨가 조금 있다가 전화를 다시 주신단다. 기다리다가 다른 곳을 방문하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자전거 보관도 가능하고 숙박도 원하는대로 가능할 것 같으니 지금 오라고. 야호!
우리의 구세주 하이모텔. 데비는 지금까지 중 최고로 좋은 love shack 이라고 좋아했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는 옥상에 안전하게 숨겨놨다.
청소 중이라고 하여 체크인만 하고 짐을 맡기고 다이소로 직행. 데비가 한국에서 사가고 싶은 완소 아이템 중 한가지. 등을 밀 수 있는 샤워 타월을 샀다.
저녁으론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을 먹었는데 뭔가 밍밍하여 실망스러웠다. 데비는 뭐야 이건 간이 전혀 맞지 않자나를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빈둥거리는 밤. 간만에 나도 침대에서 잔다.
짐정리. 내일은 일본으로 간다.
Topic: debbie-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