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싱글이다. 아직 내 짝을 만나지 못해 싱글인 상태일 뿐 독신을 주장하는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물론 난 결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결혼은 해야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 하지만 공동체는 필요하다고 믿는다. 결혼은 필요 없지만 함께할 누군가는 있었으면 좋겠다. 결혼은 의미 없지만 사랑이 의미없는 건 아니니까.
결혼이라는 시스템
신기하게도 나이가 되면 남자건 여자건 결혼을 한다. 왜 결혼을 하는걸까? 누군가는 그게 자연의 법칙이라고도 하지만, 과연?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결혼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번식하고 양육할 뿐. 사랑을 서류나 법으로 규정하는 결혼이야 말고 자연 법칙에 반하는 이상한 제도 아닌가?
결혼은 인간이 만들어 낸 번식과 양육을 위한 시스템이자, 그저 굳어진 사회적 관습이다. 도덕이나 규율같은 약속이 아닌 이상,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본인에게 필요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되면 취하고 아님 말면 되는거다. 사람들은 정말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원하고 스스로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결혼을 택하는걸까?
내가 원하는 일 중에 한 인간을 키워내는 일은 없다. 한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은 나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위대한 일이다. 나는 번식과 양육에 뜻이 없으므로 결혼이라는 시스템도 필요하지 않다. 나에겐 결혼보다는 ‘이상적인 관계’란 것이 있다.
이상적인 관계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적당한 사람? 적당한 사람을 만나 적당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럭저럭한 인생이다. 근데 왜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맞추면서 살아야 하지? 뭐가 부족하고 뭐가 필요해서? 난 적당히 맞는 누군가를 외롭다는 이유로 옆에 둘 생각은 없다.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도 흔히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다르기에 누굴 만나든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다 똑같다.
관계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인데, 적당한 사람을 만나면 노력하지 않는다.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부족하기에 내부적으로 노력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 노력한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나도 모르게 그를 닮아가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결혼을 해야하고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그놈이 그놈이니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사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난 사랑하며 살고싶다. 난 결혼보다는 관계, 자식보다는 사랑을 추구하는 사랑지상만능주의자다.
한국에서는 결혼이 마치 관계의 종착역인 것처럼 여겨진다. 또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순간 대지진이 일어난다. 부모로써의 역할이 시작되며 모든 관심과 에너지가 자식으로 집중된다. 남은 결혼생활은 그저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한 전쟁, 모든 대화는 양육에 대한 전략회의일 뿐이다. 더 이상 둘 사이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오래된 커플들에게 사랑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은 화목했고, 그 안에서 우리 자매들은 사랑받고 자랐다.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엄마 아빠 둘의 관계가 어땠는지 난 모른다. 나에겐 그저 나의 엄마이고 나의 아빠였다. 난 부모의 삶이 참 고달프겠다라는 생각은 한 적이 있지만, 두 분이 정말 서로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둘의 관계는 둘 만 알겠지만, 두 분 사이의 사랑이 내가 알아챌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던 건 확실하다.
(물론 사랑에 정해진 방식이 있는 건 아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다만, 난 표현되어지지 않는 것은 믿을 수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고.)
같이 사는 건 누구와도 같이 살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는 건 아무나랑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대부분의 커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무관심해진다. 대화하지 않는다. 난 그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이란 걸 했으니, 자식이 있으니,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으니, 남들도 다 그러고 사니, 헤어지기 번거로우니, 혼자살기 자신이 없으니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그냥 관성처럼 사는거다. 내안의 사랑을 깨우려는 노력을 하는 것 보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고 믿는게 편하니까 그냥 몸만 같이 사는거다.
기본적으로 결혼을 하면 어쩔수 없이 같이 가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되돌릴 수 없으니 어떻게라도 맞추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싫어도 해야하고, 안맞아도 맞춰야 하고, 그러다보니 실망하지만 포기하고 산다. 사랑의 핵심인 애뜻함과 관심이 결여된 채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살거나, 육아 공동체로 살거나, 오래된 친구로 살거나, 동정심 또는 책임감을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산다. 결혼을 한 이후 둘의 관계에서 오는 결핍을,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얻는 안정감으로 채우며 살아간다. 그게 당연하다고 믿는다. 당연한 건 없다. 둘이 사랑해서 남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으면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고,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육아 또는 가사에 치여서,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핑계로 소홀히 해선 안된다. 그게 스스로 한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삶이다.
연애의 불같은 사랑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 불꽃은 길어야 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또 누구나 경험으로 아는 일이다. 그렇다고 고운정 미운정이 사랑인가? 10년을 같이 살면 그 누구랑 정이 안들겠는가. 사랑은 미운정 고운정도 아니고 동정도 책임도 아니다.
사랑은 관심이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밥은 먹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갔는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마음은 어떤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무언지, 이런 걸 나누고 싶은 게 사랑이다. 좋은 것을 보았을 때 생각나는 사람, 좋은 곳에 함께 가고 싶은 사람, 맛있는 걸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 기쁠 때 축하받고, 슬플 때 위로받고 싶은 사람, 크게 싸우고도 보고싶은 사람, 나를 사랑하듯 아껴주고 싶은 사람, 그게 사랑이다.
마음을 하나하나 꺼내 내 이야길 들려줘야 하고, 상대방의 것도 들어주는게 사랑이다. 나의 바닥을 보일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사람,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사람,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야 사랑이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행복이 느껴져야 사랑이며, 함께 사랑안에 머물러 있는지 돌보는 것이 사랑이다. 이 모든 것은 저절로 되는 것들이 아니다. 내가 선택했으니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랑이다. 나의 행복을 챙기듯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그게 사랑이다.
이게 나의 사랑관이다. 내가 이상주의잔가? 누군가가 그랬다. 내가 관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겐 불가능한 환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실현 가능한 이상일 수도 있다. 현실에 쓸려가다 보면 인생도 쓸려간다. 이상을 믿을 때 현실이 될 뿐.
대부분이 그렇게 산다는 것이 나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각자 옳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삶을 살 뿐이다. 난 내 인생을 적당히 살고싶지 않다. 특히나 내 옆에서 나와 함께할 동반자라면 적당한 사람이 아닌 최적의 사람을 두고 싶다. 물론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고 주인은 나니까. 누구 말마따나, 가끔 외로운게 싫어 불편한 누군가와 여행하길 선택하면 여행 전체가 피곤해질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홀가분하게 혼자 여행하는게 낫다. 나는 지금 혼자 충분히 좋다. 다만 누군가를 내 인생의 파트너로 만난다면,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볼 뿐이다.
어차피 인생이 여행이다. 경험하며 배우고, 만났다가 헤어진다. 인생에 실패는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잃을 것도 없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게 삶이다. 그 과정에 사랑을 한다면 힘을 다해 후회없이 할 뿐이다. 누군가는 헛된 꿈이라고 해도 나는 내 이상대로 살련다.